콘텐츠목차

경남신문협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260
한자 慶南新聞協會
영어의미역 Gyeongnam Newspaper Association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보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언론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46년 5월 30일연표보기 - 출범일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9년 10월 22일 - 임시 총회 개최로 임원진 개선

[정의]

1946년 부산·경상남도 지역 신문사 및 통신사들이 설립한 협회.

[설립 목적]

1946년 5월 30일 부산과 경상남도 지역의 신문사 및 통신사가 경상남도의 신문 운영과 관련한 주요 의제를 논의 및 합의하기 위해 경남신문협회를 출범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경남신문협회는 신문의 운영과 관련하여 중요 문제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는 창구가 되었다.

[변천]

경남신문협회는 1946년 7월에 출범하였으며, 1949년 10월 22일 임시 총회에서는 실무 중심의 임원들로 새롭게 개편하였다. 이후의 변천 과정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다. 경남신문협회의 초기 집행부는 각 신문사 대표들이 맡았는데, 대표에 해당되는 간사장은 민주중보가, 사무국장은 부산매일신문이, 그리고 상임 간사에 자유민보와 부산신문, 부산상공신문, 인민해방보가 맡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남신문협회는 구독료 인상이나 광고 요금, 휴간 등과 같은 사안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도록 협의하였다. 1946년 12월, 서울의 신문들이 1일부터 구독료를 90원으로 인상하고 광고료도 따라서 인상하자, 경남신문협회는 그해 12월 2일에 긴급 상임 위원회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 민주중보와 부산신문, 부산일보 3사는 동년 12월 3일부터 서울과 같이 구독료를 90원으로 인상하고 부산매일신문과 자유민보는 사내 사정에 따라 1947년 1월부터 인상한다고 결정하였다. 1947년 5월에는 경남신문협회가 신문 구독료를 조선신문협회 결의에 호응하여 같은 해 6월 1일부터 60원에서 100원으로 인상한다고 결의하였다. 이후에도 계속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면서 부산 언론계의 현안에 공동 대응을 모색하였다.

1949년 12월에 구독료 인상 문제를 둘러싸고 부산일보를 제명 처분하는 내홍을 겪었다. 그해 12월 13일에 경남신문협회는 임시 총회를 개최하여 협회에 협조하지 않고 회칙을 여러 번 무시한다는 명분으로 부산일보를 제명 처분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공지하였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부산일보는 동년 12월 21일자 지면을 통해 구독료를 인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천명하면서 경남신문협회는 친목 단체일 뿐이지 회원사의 운영까지 간섭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경남신문협회는 그해 12월 30일에 「부일의 맹성을 촉함」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성명서에서 제명 처분의 구체적 사유가 구독료 인상에 보조를 같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부산일보 측의 반성을 촉구한다고 주장하는 등 구독료를 중심으로 한 신문의 운영과 관련하여 협의체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경남신문협회를 통해 부산과 경상남도의 신문사와 통신사들이 모여 신문 운영에 대한 현안에 공동 대응, 협의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