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0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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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正社 |
영어의미역 | Kukjungsa Tailor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6[중동 141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영숙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남성 양복점.
[개설]
전신은 1946년에 동구 범일동에서 김필곤[사망, 1924년생, 부산양복협회 초대 회장]이 개업한 태양피복사로,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양복점이다. 부산 지역 유일의 명장 업체이다. 현 대표인 양창선은 1967년 18세의 나이로 광복동 현대 복장사[대표 김영필, 폐업]에서 10여 년간 기술을 배우다가, 1970년경 코코 양복점으로 옮겨서 일하였고, 국정사를 인수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1969년부터 국제 기능 대회와 세계 장애인 기능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채성희 등과 함께 국정사를 운영해 왔으며, 양복의 기술 전수를 위하여 인재 발굴과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정사는 1940년대 부산 지역 양복점들 중, 유일하게 남아서 양복점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남성 양복의 주문 제작은 대기업의 대량 생산에 밀려 어려운 경영 환경에 있으나 명인다운 투철한 장인 정신에 의해 ‘수제 양복의 손맛을 알고 세상에서 하나 뿐인 나만의 옷을 고집’하는 고정 고객들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건립 경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설립한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중앙동의 구 부산시청 부지에 소재] 내에 ‘정자옥’이라는 양복점에서 근무하던 김필곤은 일본인에게 양복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후 1946년에 동구 범일동의 구 삼일 극장 옆에서 태양피복사를 개업하여 철도청 등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였다. 당시 범일동 지역은 조선 방직을 중심으로 직물 산업이 활성화되었고, 이후 태양피복사를 중구 남포동으로 이전하면서 1948년에 ‘국정사’라는 이름으로 개업하였다. 국정사(國正社)라는 이름은 일제 강점기 한국인의 고난을 생각하여 ‘나라가 바로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변천]
1961년 5월 5·16 군사 정변 직후에 중구 광복동 1가로 이전하였고, 1978년에 창업주의 동생인 김영곤[87세]이 2대 사장이 되었다. 1981년에 현 대표가 3대 사장이 되었고, 2005년 9월 21일에 대표가 대한민국 명장[양복 부문]에 선정[노동부]되었다. 2010년 6월 1일에 해운대구 중동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성]
접객과 상품 판매를 위한 매장[105㎡]과 생산 시설[165㎡]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국정사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파라다이스 호텔 신관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다. 2012년 5월 현재, 대표와 10명의 기능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남성복 정장 위주로 주문 제작하고 있으며, 양복 한 벌 당 가격은 대략 150만 원 내외이다. 제작을 위해서는 사전 예약과 방문을 통한 상담과 치수 재기[採寸, 채촌은 패션계에서 쓰이는 말로, 일본어에서 비롯된 말임]를 거쳐, 제본·재단·가봉·봉제·마무리 등의 과정을 거친다. 고정 고객을 중심으로 예복 제작 등을 위하여 손님들이 찾고 있다. 국정사 패션 그룹으로 마이스터하우스(Meister Haus)라는 경영 회사를 설립하고, REX[1978년 설립, 드레스 셔츠 전문], 쥬스또우노(Giusto Uno)[2011년 설립, 기성복·맞춤복·턱시도 전문], 부산상례복[1999년 설립, 상례복 대여·판매] 등을 사업 회사로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