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9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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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孝村 |
영어의미역 | Chunghyo-ch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충효촌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경업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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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시기/일시 | 1951년 - 부산시 중부출장소 영주동이 됨 |
변천 시기/일시 | 1957년 - 부산시 중부출장소 영주동에서 부산시 중구 영주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부산시 중구 영주동에서 부산직할시 중구 영주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중구 영주동에서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7년 - 지역의 슬럼화로 충효촌지역주택조합 결성 |
변천 시기/일시 | 2006년 - 옛 마을 터에 우남 이채롬 아파트 완공되며 옛 모습 사라짐 |
자연 마을 | 충효촌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충효촌 |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마을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화교 2세들이 외지에 살면서 부모를 공양하기 위해 수시로 마을을 찾는다 하여 충효촌(忠孝村)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충효촌은 6·25 전쟁 때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피난 온 화교들의 임시 수용소가 집단 거주지로 정착되며 형성된 마을이다. 당시 이 지역은 청관 조계지로 비탈진 공동묘지였으며, 이 지역에 정착한 화교들은 대부분 중국 산둥성에서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정치 난민이었다. 충효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1951년에 이 지역은 부산시 중부출장소 영주동에 속하였고, 1957년에는 중구 영주동 충효촌이 되었다. 1963년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하였고, 1995년에는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충효촌이 되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자 충효촌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이 지은 지 50년이 넘은 노후 건물로서 2층 목조 단독 주택이 많아 화재의 위험성이 제기되었고, 화교 2·3세는 대부분 외지로 떠나 빈집이 늘어나자 도심 속 슬럼 지대로 방치되어 왔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1997년 충효촌지역주택조합이 결성되어 옛 마을 터에 2006년 아파트 단지[우남 이채롬 아파트]가 완공되어 주민들이 입주하였다.
[자연 환경]
충효촌은 구봉산의 남동쪽 사면 비탈진 언덕에 자리하였다. 동쪽으로 600m 정도 떨어져 남해와 접한다.
[현황]
충효촌은 영주 1동 11통 지역으로, 현재는 아파트 단지가 건립되어 옛 모습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