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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발추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9057
영어의미역 Seongbalchu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성발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경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47년 - 부산부 사중면 영선동에 속함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부산부 사중면 영선동에서 부산시 사중면 영선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1년 - 부산시 사중면 영선동에서 부산시 영도출장소 영선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부산시 영도출장소 영선동에서 부산시 영도구 영선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부산시 영도구 영선동에서 부산직할시 영도구 영선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영도구 영선동에서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으로 개편
자연 마을 성발추 마을 -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성발추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전하는 말에 따르면, 현재 영선동에 있는 농협 영도지점 부근을 성발추로 불렀다고 하는데, 영선 2동 복천사에서 제2 송도 마을로 흐르는 물이 고인 샘을 성발추 샘이라 불렀다는 것으로 미루어 마을 명칭은 확인할 수 있으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성발추는 주변에 있던 성과 관련한 이름으로 추정되지만 성(城)과 관련한 지형지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제2 송도 마을의 해안 쪽 시멘트벽이 본래 바닷가 몽돌로 쌓은 벽이라서 성벽과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성발추 마을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개항 이전 영도의 마을에 대한 기록은 남겨진 바가 없고 행정 구역 설정도 늦었던 것으로 볼 때 부산항 개항 이후 민가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마을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1973년 대동조선주식회사를 설립해 우리나라 최초로 컨테이너 전용선을 제조한 윤종근(尹鍾根)[1913~1980]이 1920년경 이주해 들어왔다고 하며, 문학가 김소운(金素雲)[1907~1981]도 이 지역 출신인 것으로 미루어 1900년대 초반에는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1910년 부산부 사중면 영선리가 되었으며, 1925년 영선정(瀛仙町)으로 개칭되었고, 1944년에는 영선정이 어영정(御影町) 1정목·어영정 2정목·어영정 3정목·어영정 4정목이 되었다. 1947년 광복으로 어영정 1정목·어영정 2정목·어영정 3정목·어영정 4정목이 영선동 1가·영선동 2가·영선동 3가·영선동 4가로 개칭되었다. 1949년 부산부가 부산시로 개칭되었으며, 1951년에는 영도출장소가 설치되고 그 관할이 되었다. 1957년 영도출장소가 영도구로 승격하였다.

1963년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82년에는 영선동 3가 일부가 신선동 3가로, 신선동 1가 일부가 영선동 1가로, 신선동 2가 일부가 영선동 2가로 편입되고, 1984년에는 신선동 3가 일부가 영선동 4가로 편입되는 법정동 구역 조정이 있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성발추 마을의 남동쪽에 봉래산이 있고, 본래는 북쪽과 서쪽으로는 바다와 접해 있었으나 북쪽 해안가의 매립으로 현재는 평지가 펼쳐져 있다.

[현황]

성발추 마을부산보건고등학교[옛 영도여자상업고등학교]와 반도 보라 아파트 부근에 있었으나, 현재는 도시화되어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서쪽 해안가에 해안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고, 북서쪽에는 남항 대교가 개통되었으며, 북쪽의 봉래산 중턱에 복천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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