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9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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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Goksu Village |
이칭/별칭 | 석탄고 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 곡수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경업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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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부산부 사중면 영선리에 속함 |
변천 시기/일시 | 1925년 - 부산부 사중면 영선리에서 부산부 사중면 영선정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4년 - 부산부 사중면 영선정에서 부산부 사중면 항정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7년 - 부산부 사중면 항정에서 부산부 봉래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9년 - 부산부 봉래동에서 부산시 봉래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1년 - 부산시 봉래동에서 부산시 영도출장소 봉래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7년 - 부산시 영도출장소 봉래동에서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에서 부산직할시 영도구 봉래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영도구 봉래동에서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으로 개편 |
자연 마을 | 곡수 마을 -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 곡수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곡수 마을이 있던 지역은 해군 전용의 연료 보급용 저탄장(貯炭場)[석탄 저장 창고]이 있어 석탄고 마을로도 불렸다. 곡수라는 명칭은 코크스[석탄의 한 종류]를 콕스로, 이후 곡수로 차음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한다.
[형성 및 변천]
곡수 마을의 정확한 형성 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1885년(고종 22) 일본인들이 이 지역 일대가 포함된 영도 땅 약 1만 6528.92㎡[5,000평]을 조차(租借)하여 사용하면서 해군 전용의 저탄장(貯炭場)을 조성하였고, 이후 마을 사람들의 생계 방편[창고에서 일을 하거나 땅에 흘린 석탄을 모아 재가공해 팔거나 또는 일부 훔쳐 내는 등]이 되었다고 전한다. 마을 이름도 석탄 창고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때 개항 이후 형성된 마을임을 추정할 수 있다.
곡수 마을은 1914년 부산부 사중면 영선리에 속하였으며, 1925년 영선정(瀛仙町)으로 개칭되었고, 1944년에는 항정(港町) 1정목·항정 2정목·항정 3정목·항정 4정목·항정 5정목으로 개편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을 개칭하며 봉래 1동·봉래 2동·봉래 3동·봉래 4동·봉래 5동이 되었다. 1949년 부산부가 부산시로 승격하고, 1951년에는 영도출장소가 설치되어 그 관할이 되었다. 1957년 영도출장소가 영도구로 승격하였다. 1963년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에는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였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화되어 현재는 마을 형태를 찾을 수 없다.
[자연 환경]
곡수 마을은 남쪽에 봉래산이 있고 북동쪽은 해안과 접하였다.
[현황]
곡수 마을은 영도구 봉래동 해안 도로를 끼고 창고가 운집해 있는 남동쪽에 위치하였던 마을로, 지금의 삼성 홈플러스 영도 지점의 남쪽 부근이다. 현재는 해안 도로를 따라 선박 관련 업종이 늘어서 있고 주변은 시가지화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