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9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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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Gaean Village |
이칭/별칭 | 포내(浦內) 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남항동 개안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경업 |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남항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포구의 안쪽, 곧 개[浦]의 안쪽 마을이라 하여 개안[浦內] 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
[형성 및 변천]
개안 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기록에서 확인되는 바가 없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1900년대 초반만 해도 마을로서의 형태가 뚜렷하게 전하지 않다가 1910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부산부 사중면 영선리가 되었다. 1925년 영선리가 영선정(瀛仙町)으로 개칭되었다. 일제 강점기 남항동 무궁화 아파트와 화랑 맨션 자리에 자갈밭이 있었고, 그 북동쪽 비탈진 언덕에 10여 호가 거주하는 개안 마을이 있었는데, 위쪽 언덕에는 일본 기마대가 주둔하였다고 전한다.
1944년 영선정이 6개 정(町)으로 분할되며 석견정(汐見町)이 되었고, 1947년 일본식 동명을 개칭하며 남항동(南港洞)이 되었으며, 1949년 부산부가 부산시로 개칭하였다. 1951년에는 영도출장소 남항동에 속하게 되며, 1957년에는 영도구 남항동에 속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 전쟁을 거치며 지역 내에 판잣집이 늘어나고 남항 관련 시설이 모여들었으나, 1959년 태풍 사라호로 이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이후 해안가에 높다랗게 방파제를 축조하며 매립지가 조성되며 마을이 사라졌다.
[자연 환경]
개안 마을은 본래 북서쪽으로 자갈 해안이 있었고, 남동쪽으로는 낮은 언덕이 있는 해안가에 자리하였으나, 현재는 대규모 매립 공사로 평지가 되어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현황]
개안 마을은 현재의 영도구 남항동 15통과 16통 사이 옛 방파제 안쪽 길에 있던 마을로, 일제 강점기 남항의 매축과 1959년 태풍 사라호 이후 피해 지역의 재정비 사업을 벌였으며, 1968년부터 1977년까지의 해수면 매립 공사 등으로 옛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몇몇 나이든 어른들만 마을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마을 앞 자갈 마당은 매립되어 무궁화 아파트와 화랑 맨션이 들어섰고, 그 동쪽으로 대평초등학교와 남중학교가 자리한다. 또한 마을의 북쪽과 서쪽 해안은 매립되어 항만 물류 관련이나 선박 관련 또는 냉동·기계 업종의 공장들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