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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923
영어의미역 Kkot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꽃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경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47년 - 서대신동 꽃 마을이 됨
변천 시기/일시 1951년 - 서구출장소 관할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서구 서대신동 꽃 마을이 됨
변천 시기/일시 1963년연표보기 -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꽃 마을이 됨
자연 마을 꽃 마을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꽃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구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주변에 자라는 야생화를 꺾어 팔며 생계를 유지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1876년(고종 13) 부산항의 개항으로 일본인 전관 거류지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군 수송로를 조성하려고 초량 왜관에서부터 구덕 고개를 넘어 구포까지 연결되는 도로[임진왜란 때부터 사용했던 길]를 개수하였다[1,000여 명의 노동자와 석공 300여 명을 동원해 3.6m로 도로 폭을 넓히는 공사]. 이를 계기로 외지에서 옮겨 온 빈민들이 이 지역에 움막과 초가 등 무허가 주택을 짓고 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한다. 당시 정착민들이 구덕산에서 채집할 수 있는 들꽃과 약초를 시장에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해 꽃마을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6·25 전쟁으로 피난민이 몰려들며 마을의 규모가 커졌다.

마을은 일제 강점기 부산부 서대신정에 속하였고, 1947년 서대신동 꽃마을이었으며, 1951년 서구출장소에 속하였다. 1957년 서구가 되고, 1963년에는 부산직할시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이 되었다. 당시 꽃마을은 영세민의 불량 주택이 난립해 있었는데, 1970년대 국화 단지를 시작으로 화훼 단지가 조성되었다. 1980년 마을 진입로가 포장되고 마을버스가 운행되었고,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이 되었다. 2000년대 중반 마을이 있는 지역이 자연 녹지에서 주거지로 용도 변경이 이루어져 주택지로 변하게 되었다. 현재는 화훼 단지보다 구덕산을 오르는 시민을 위한 상점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자연 환경]

북동쪽으로는 엄광산, 남서쪽으로는 구덕산이 솟은 구덕 고개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주거지는 엄광산의 남서쪽 기슭의 높이 2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리한 산간의 오지 마을이다.

[현황]

꽃마을은 서대신동 6-3번지와 산9번지 일대의 구덕산 기슭에 있는 마을로, 현재는 화훼 단지보다는 엄광산 길을 오르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자연 녹지가 해제되어 주거 환경은 개선되었으나, 현재도 서대신동에서 마을로 통하는 외길만 있어 교통이 불편한 산간 오지이다. 마을 내에 구덕령교회와 수도사·대봉사가 있고, 마을 동쪽 기슭에 구덕 청소년 수련관이 있다. 마을 남쪽으로 구덕 터널이 통과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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