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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578
한자 中里-熊川里-
영어의미역 Jung-ri Village[Ungcheon-ri]
이칭/별칭 웅천 마을,곰내 마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중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개설 시기/일시 조선후기
변천 시기/일시 1895년 - 기장군 상서면 웅천동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웅천리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웅천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웅천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6년 -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웅천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웅천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웅천리에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로 개편
자연 마을 중리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중리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웅천리(熊川里)의 중심지에 있다고 하여 중리(中里) 마을이라고 한다. 또 웅천리의 한자를 빌려 웅천[곰내] 마을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중리 마을[웅천리]은 임진왜란 이후 옥씨(玉氏)·정씨(丁氏)를 비롯하여 김해 김씨(金海金氏), 남평 문씨(南平文氏), 동래 정씨(東萊鄭氏)가 집단으로 정착,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후 마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가 1914년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경상남도 기장군 상서면(上西面) 웅천동동래군 철마면 웅천리로 개편되었다. 1964년 경상남도 함안 등지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 7세대가 정착하면서 소산벌 일대를 개간지로 개척하여 잠업과 고랭지 채소 등을 가꾸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다.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에 병합되면서 양산군 철마면에 속하였다가, 1986년 양산군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어 그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어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중리 마을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자연 환경]

중리 마을 위쪽에는 폭포가 있는데, 기장군 철마면 거문산[543.4m]과 문래봉[402m] 사이 웅천 상류에 있는 무지개못 폭포다. 이 계곡에 홍류동(虹流洞) 소류지가 있고, 이 저수지 바로 위에 거대하게 걸려 있는 폭포가 기장 팔경 중의 하나인 구천 은하(九天銀河) 홍연 폭포이다. 100여m가 넘는 폭포가 3단계에 걸쳐 같은 폭의 수직으로 이어져 있다. 수량이 많을 때는 이 몇 단계 폭포가 한 개의 거대한 폭포가 되어 수백 척 아래로 떨어지면서 물소리가 햇볕을 받아 찬란한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되므로 홍폭 비옥(虹瀑飛玉)이라 하였다. 동쪽에는 아홉산, 서쪽에는 거문산이 있다. 중리 마을철마천[일명 장전천]의 상류에 해당한다.

[현황]

중리 마을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455번지 일대 4통 지역에 있는 자연 마을이다. 마을 안에 1993년 7월 13일에 세워진 중리 회관이 있는데 중리 부녀 경로당과 함께 사용한다. 중리 마을은 기장의 대표적인 문화 유적이 집중된 곳이다. 마을 회관 앞에 있는 의정(毅政) ‘김활경 공적비(金活更功績碑)’ 뒤로 조그마한 체육공원이 있고, 그 옆에 1974년 3월 산수회(山水會)에서 건립한 수리정(愁離亭) 표지석과 1977년 동지공(同知公) 후손 문성운(文盛運)·문덕수(文德守)가 건립한 정헌대부 동지중추부사 ‘문공 휘세명 집승유허비(文公諱世鳴集勝遺墟碑)’가 서 있다.

중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70m 정도 들어가면 철마초등학교 교무위원과 철마면 3·1운동 주동자로 활동했던 문용호(文龍鎬) 생가인 기장군 지정 기념물인 고가(古家)가 나타난다. 이 가문에서는 준호구 단자, 신호적 등 67점, 차첩(差帖) 및 소지(所志) 등 25점 고문서와 함께 경서들을 소장하고 있다.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280번지에 있는 사정단(沙丁壇)이라고 불리는 상현당(尙賢堂)은 동래 정씨 동지공파의 단소로 선무 원종공신 정언룡(鄭彦龍)과 임진 공신 정인정(鄭麟定)의 공적을 기리려고 1928년 건립하였다.

마을에는 또한 기장의 유명한 수리정(愁離亭)이 있다. 수리정의 본래 이름은 집승정(集勝亭)으로, 이 지역에서 대대로 세거해 온 남평 문씨 집안에서 처음 세웠다. 1689년(숙종 15) 이선(李選)이 이곳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이 정자에 오르면 온갖 근심과 시름을 떨쳐 버릴 수 있다 하여 수리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선은 이곳에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가사 등을 재정리하여 「송강 가사 이선본」을 집대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 수리정 정자를 복원하여 세웠는데, 정자 앞에는 1974년 산수회에서 세운 ‘수리정 비’와 ‘집승정 유허비’가 있다. 이 정자는 기장 지역 정자 문화의 효시이며, 17세기 영남 유학과 기호 유학의 만남의 장으로 기장의 선비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홍류동 계곡에 있는 문연정(文淵亭)은 남평 문씨 부사공파(府事公派) 파조 문여욱(文汝郁)의 학덕을 기리려고 1632년(인조 10)에 건립하였다. 그 후 1927년 후손인 문용호를 비롯한 지역 유림이 처음 수계를 한 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근래에는 기장군 한시 연구회에서 해마다 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웅천리 중리 당산은 수리정에서 서북쪽 40m 지점에 있으며, 건립 연대는 미상이다. 제당 주위에는 담장이 없고, 소나무 4그루가 있다. 제의는 1년에 한 번, 음력 정월 14일 밤 자정경에 올린다. 마을에는 웅천리 서당이 있었는데, 중리의 한의생(漢醫生) 김채홍(金埰洪)[1870~1928]이 자신의 집에 중리 서당을 개설하여 일반 학문과 함께 한의학을 가르쳤다. 그 당시 서당 훈장으로는 철마면 3·1 운동을 주동한 정인준·문진호·문용호 등이 있었다. 마을의 주업은 농업이며, 그 가운데 옥수수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또한 마을에 두부 공장을 유치하여 성업 중이며, 일부는 한우 불고기집을 운영하여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9.08 오탈자 수정 [현황]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290번지에 있는 사정단(沙丁壇) →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280번지에 있는 사정단(沙丁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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