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491
한자 送亭-送亭里-
영어의미역 Songjeong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송정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송정리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송정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송정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6년 -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송정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송정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송정리에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로 개편
자연 마을 송정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송정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송정(送亭) 마을[송정리]은 동래·양산·울산으로 통하는 큰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데, 계곡의 노송과 팽나무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쉬어 가는 정자나무가 되고, 점차 정자나무 아래로 주막 등이 생겨나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인접한 고을의 관원들이 이 정자나무까지 와 배웅을 하여서, ‘보낼 송(送)’에 ‘정자 정(亭)’을 써 송정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차성가(車城歌)」 하서면(下西面) 편에 “임곡상양(林谷斜陽) 저문 길에 입석(立石)에 말을 메고 우리 벗님 보내는데, 그 안니[아니] 송정자(送亭子)가”라고 하여 만남과 헤어짐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으며, 송정이란 지명도 나온다. 송정리 마을이 커지자 입석 마을로 나누어졌다. 송정리는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1831]에는 기장현 하서면 입석방(立石坊)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1904]에는 하서면 입석리만 기록되어 있다.

1914년 3월 1일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기장군이 없어지고 동래군 철마면 송정리라는 마을 이름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1936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의하면, 당시 동래군 기장면 송정리광주 노씨(光州盧氏) 18가구가 사는 동성 마을이었다. 1973년 양산군에 속하였다.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며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송정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송정 마을 동쪽으로 철마산이 있고, 마을의 서쪽으로 송정천이 흐른다.

[현황]

송정 마을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573번지 일대로 송정 1리는 17통 지역이고, 송정 2리는 18통 지역에 있는 자연 마을이다. 두구동 조리 마을이 끝나는 곳에 송정천이 나온다. 이 송정천을 경계로 금정구철마면이 경계를 이룬다. 마을의 송정 시장은 공설 시장 제1호였고, 5일과 10일을 장날로 정하여 5일장이 섰다. 송정 시장은 조선 시대 읍지류(邑誌類) 등에는 보이지 않지만, 1926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시가지의 상권[市街地の商圈]』에 동래군의 6개 시장인 동래 시장·구포 시장·하단 시장·기장 시장·좌천·송정 시장에 들었다. 농협 뒤쪽 공터는 조선 시대 우시장(牛市場)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러한 시장 형성이 송정 마을을 커지게 만든 이유였다.

송정리 농협지소 앞 사거리에는 조선 시대 경상 관찰사를 역임한 이근필(李根弼)[1816~1882]의 영세불망비가 있다. 이근필 관찰사 재임 때 기장현의 간사한 향리들을 다스려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 주었기에 8면의 주민이 그 공을 기리어 공동으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마을 주업은 논농사가 대부분이나 송정 시장을 중심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