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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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栢吉- |
영어의미역 | Baekgil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 백길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섭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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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895년 - 기장군 상서면 백길동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백길리 |
변천 시기/일시 | 197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백길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백길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6년 -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백길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백길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백길리에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로 개편 |
자연 마을 | 백길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 백길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옛 이름은 박길리(朴吉里)이다. 박(朴)은 박실[朴谷]·배미산·배산·바리산 등의 예와 관련된 ‘밝다’의 옛 말이고, 길(吉)은 ‘길 영(永)’ 자의 뜻을 받아 ‘밝은 고개의 긴 안쪽’, 즉 양지 안쪽 마을이란 의미가 된다고 본다. 실제 백길리는 와여리에서 웅천리로 통하는 긴 협곡의 안쪽에 위치한 양달 골짜기에 있다. 박(朴)이 백(栢)으로 변한 것은 ‘밝다’의 옛말을 음차 표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마을 입구에 잣나무가 있어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이 잣나무가 마을을 융성하게 할 것이라 하여 ‘잣 백(栢)’, ‘길할 길(吉)’ 자로 썼는데 현재는 잣나무가 없어졌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백길리 유물 산포지가 통일 신라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아 마을이 일찍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차성가(車城歌)」에 “산수가 절승(絶勝)하니 풍속니[이] 박길(朴吉)니[이]라”라고 하여 박길[백길]이란 지명이 나온다. 1904년(고종 41) 간행된 『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에 의하면, 당시 기장군 남면(南面) 백길동에는 19호가 살고 있었다. 집은 대개 초가 2~4칸이다. 김덕일(金德一)·김치일(金治一) 집이 와가(瓦家) 5칸으로 가장 크고, 초가(草家) 4칸 집이 5호이다. 김씨[13호]가 가장 많이 살고, 다음이 정씨(鄭氏)[3호] 순이다. 19호 가운데 김씨가 13호, 우봉 김씨(牛峰金氏) 재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봉 김씨가 집성촌을 이룬 것으로 생각된다.
1936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의하면, 당시 동래군 철마면 백길리에는 우봉 김씨 25세대의 동성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3월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동래군 철마면 백길리가 되었고, 1973년 양산군에 속하였다.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며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 백길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백길 마을 뒤 북쪽으로 철마면의 주산이라 할 수 있는 거문산(巨文山)[543.4m]이 있고, 남쪽으로는 운봉산(雲峰山)[454.5m]이 있다.
[현황]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 139번지 일대 2통 지역에 있는 자연 마을로, 와여리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나온다. 마을 입구 길 오른쪽에는 백산단(柏山壇)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길을 따라 가면 백산단, 백산정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곳은 우봉 김씨 재단이다. 이곳을 나와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도로 변에는 ‘와여~백길~석길’이라고 쓴 버스 정류소가 있다. 마을 안에는 1982년 11월 10일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가 있는데, 수령 400년, 수고 15m, 둘레 3.8m로 면(面)나무 지정번호 2-16-5-2이다. 또 우봉 김씨 참찬공파(參贊公派)의 익도(益都) 김대연(金大連)과 무암(茂菴) 김상경(金尙涇)을 배향하는 덕수당(德修堂), 백산당(栢山堂)이 있는데, 매년 음력 3월 회일(晦日)에 유림제를 봉행하고 있다.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 131-4번지와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 83번지 일대 백길리 유적에는 통일 신라 이후의 것으로 판단되는 연질 토기, 도질 토기, 자기 등이 출토되었다.
백길리 고당 할매집은 백길 노인정에서 서쪽 15m 거리에 있는데, 제당 할배 나무가 있다. 건립 연대는 미상이다. 제당 주위에는 담장이 없고, 주위에는 민가가 있으며, 그 옆에는 보호수인 팽나무가 있다. 제의 날짜는 옛날에는 음력 정월 14일 밤 자정이었으나, 6·25 전쟁 이후부터는 1년에 1회, 보름날 오전 10~11시 사이에 지낸다. 마을의 주업은 논농사인 벼농사이며, 마을 입구에 한우 불고기집을 경영하는 집들이 점차 늘어가는 추세이다. 백길리는 법정리와 행정리가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