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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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舊基- |
영어의미역 | Gugi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구기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맹인섭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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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895년 - 기장군 중북면 반룡동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동래군 장안면 반룡리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67년 - 구기 마을과 반룡 마을 통합 |
변천 시기/일시 | 1973년 7월 1일 - 동래군 장안면 반룡리 반룡 마을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반룡리 반룡 마을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5년 10월 1일 -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반룡리 반룡 마을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읍 반룡리 반룡 마을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읍 반룡리 반룡 마을에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반룡 마을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7년 2월 13일 - 반룡 마을에서 구기 마을 분리 |
자연 마을 | 구기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구기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구기(舊基) 마을은 원래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구터’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마을 북동쪽 펑퍼짐한 곳에 서당이 있었는데, 이 서당이 폐쇄되면서 ‘구서당 터’라고 불리다가 줄여서 ‘구터’가 되었다고도 한다. 구터가 한자명으로 바뀌며 ‘오랠 구(舊)’ 자와 ‘터 기(基)’ 자를 쓰게 되었다. 터가 세다고 ‘터실’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밤이면 말굽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도깨비 소리로 시끄러웠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구기 마을의 형성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고, 구기 마을이 속한 반룡리의 형성 시기도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을미개혁 때 기장군 중북면 반룡동이 되었다가, 1914년 동래군 장안면 반룡리에 속하였으며, 1967년부터 본 마을인 반룡 마을과 통합되었다. 1973년 7월 1일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반룡리가 되었다가, 1985년 10월 1일 장안면이 장안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에 편입되며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반룡 마을로 개편되었으며, 1997년 2월 13일 기장군 조례 제163호에 의거 구기 마을로 분리, 부활되었다.
[자연 환경]
서쪽에 방모산이 있고, 북쪽으로 장안천이 흐른다. 남쪽에는 소하천이 동북쪽으로 흐르며 장안천과 합류한다.
[현황]
구기 마을 앞 정류장에 ‘반룡[구기] 길천’이라고 쓰여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구기 마을이 나온다. 마을의 남서쪽에 장안 산업 단지가 있고, 북쪽에 신리 마을, 남동쪽에 월내역과 길천 마을이 있다. 마을 내에 구기 마을 회관이 있으며, 마을 회관에서 서남쪽으로 약 80m 지점 숲 옆에 구기 당산이 있다.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자정에 당산 할배제와 당산 할매제를 지낸다. 반룡리 138-6번지에 김해 김씨(金海金氏) 안경공파(安敬公派) 재실인 경모재(敬慕齋)가 있다. 마을의 주업은 유실수와 채소 재배 및 축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