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7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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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音樂硏究所 |
영어의미역 | Busan Misic Institute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원명 |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 있었던 음악 교육 기관.
[설립 목적]
부산음악연구소는 음악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가르침으로써 당시 부산 지역의 음악 연주 활동 및 음악 문화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부산음악연구소는 경상남도 김해 출신으로 해방 후 부산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 배도순(裵道淳)에 의해 1947년 5월에 처음으로 문을 열게 되었다. 당시 경상남도청 옆[부산시 서구 부민동]에 배도순의 부친이 마련해준 가옥에 연구소를 개설하여 음악을 배우려는 제자들에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지도하였으며, 여기서 제자 김형진(金亨鎭)을 배출하였다.
배도순은 1949년 5월에 중구 보수동에 2층 건물을 얻어서 1층은 음악다방 문화장을 경영하고, 2층은 부산음악연구소를 부산음악원으로 개칭하여 운영하였다. 배도순은 문화장을 1958년까지 운영했으며, 부산음악원을 체계적인 음악 전문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해 광고까지 내는 등 계속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언제까지 운영되었는지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47년 5월에 문을 연 이후로 정기적인 문하생 발표회를 가졌으며, 그 해에 배도순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1947년 12월 3일에는 김수현(金守賢)이 지배인으로 있던 도립 극장[현 부산 극장]에서 개최되었던 ‘부산 음악가 대연주회’에서 부산음악연구소의 학생들로 합창단을 구성하여 발표를 하기도 하였다. 1949년 5월부터 부산음악연구소를 부산음악원으로 개칭하여 운영하면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현악 4중주단을 조직하게 되었는데, 그 멤버는 배도순[제1바이올린], 김광수(金光洙)[제2바이올린], 백경준(白敬俊)[비올라], 윤이상(尹伊桑)[첼로]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1949년에 미 공보원에서 첫 발표회를 가졌으며,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하이든의 「소야곡」 등을 연주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음악연구소는 배도순을 중심으로 해방 후의 부산 음악계를 이끌었는데, 특히 현악 음악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당시에 연구소 출신의 학생들과 지역 음악인들이 함께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펼침으로써 지역 음악 연주 문화가 활성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