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7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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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公立幼稚園 |
영어의미역 | Busan Public Vocational Kindergarde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대민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에 있었던 일본인 공립 유치원.
[설립 목적]
청일 전쟁 이후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일본인 교육 기관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소학교를 비롯한 유아 교육 시설도 다수 설립되었다. 부산공립유치원은 일본 거류민의 급증과 교육열의 증가로 부산에 거류중인 일본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14년에 설립 인가를 받아 당시 토성정 2정목[현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 고등여학교 동쪽에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고, 1915년 2월 2일에 준공하였다.[부지 1,226㎡, 건평 407㎡, 공사비 6,250원, 설비비 1,500원이 들었으며, 원아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같은 해 4월 1일에 다카하시[高橋恕]가 원장으로 취임하였고, 보모 1명, 조수 1명, 원아 25명으로 동년 5월 10일에 개원하였다. 1916년 전중수차랑(田中秀次郞)이, 1919년 10월 31일에는 원장은 후루이치로 기록되어 있다. 1917년 4월 2일에 금평정[현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부산부 청사에 이전하였다. 1926년 10월 아동 수는 남자 52명, 여자 58명 총 110명이며, 원지는 415.8㎡, 교실은 보육실 3, 유희실 1개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경상남도에서 인수하여 운영하다가 1948년에는 부산시로 이관되어 부산시립유치원으로 개설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유치원 원사가 미군 주둔지로 이용되면서 이용이 일시 중단되었다. 이후 1957년 유치원 민영 운영 위원회에서 운영을 하다가 1958년 이동희(李東姬)가 인수하여 경영을 하다가 1961년에는 민영화가 되어 사립 부산유치원으로 개원을 하였다. 이후 1992년 운영이 악화되어 결국 12월 1일부로 폐쇄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제 강점기 부산공립유치원의 유치원 원칙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2장 4조- 본원의 보육 연한은 3년으로 한다.
제3장 6조- 본원의 반 수는 3반으로 편성한다.
7조- 본원의 원아 정원은 매 반 3, 40명씩 전체 원아 100명으로 한다.
제5장 10조- 학년은 3학기로 나눈다. 제1학기는 4월부터 7월까지, 제2학기는 9월부터 12월 까지, 제3학기는 1월부터 3월까지로 한다.
제8장 27조- 보육 과목은 음악, 율동 유희, 담화, 회화, 수판 6과목을 한다.
[의의와 평가]
부산공립유치원은 부산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공립 유아 교육 기관이었다. 비록 일본인들의 교육을 위해서 설립되었지만 해방 이후 조선인에게 경영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갔다. 해당 교과 역시 일부는 일제 강점기와 비교하여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이후 자체적으로 이를 세분화하여 음악, 율동, 유희, 수판 등으로 나누어 교육을 한 점은 특이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