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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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港監理署日錄 |
영어의미역 | Record of Construction Supervision for Busan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영로226번길 15[영주동 582-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지영 |
[정의]
1889년부터 1902년까지 부산항 감리서의 일록(日錄)을 필사한 책.
[개설]
『부산항 감리서 일록』은 1889년(고종 26) 1월부터 1902년(고종 39) 5월까지 개항기에 부산항 감리서[현재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582-2번지 일대]에서 중앙과 지방의 각 관아와 주고받은 공문을 매일 간략하게 기록하여 간행한 책자이다.
[저자]
부산항 감리서는 개항장의 외교·통상 업무와 재외 거류민 관계 업무를 관장할 목적으로 부산 지역에 설치된 관청이다. 초기에는 동래 부사가 감리를 겸임하면서 기존의 행정 체계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다가 1890년 독립된 관서로 설치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현재 『부산항 감리서 일록』의 원본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각사등록(各司謄錄)』17에도 영인되어 실려 있다.
[형태/서지]
표제는 ‘일록(日錄)’이고, 내제는 ‘부산 감리서 일록(釜山監理署日錄)’이다. 필사본 6책이며, 크기는 30.1×18.4cm이나 일정하지 않다. 순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부산항 감리서 일록』은 총 6책으로 되어 있다. 제1책은 1889년 1월 1일부터 8월 30일까지, 제2책은 1890년 9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제3책은 1891년 4월 1일부터 10월 27일까지, 제4책은 1891년 10월 28일부터 12월 30일까지, 제5책은 1901년 7월 19일부터 9월 1일, 제6책은 1901년 9월 1일부터 1902년 5월 13일까지의 부산항 감리서의 일록이 날짜별로 실려 있다.
날짜마다 기록자의 성명이 기재되어 있는데, 대개 그 기록은 방판(幫辨), 서기관 또는 주사가 담당했다. 체제는 일자(日字)와 간지(干支), 일기(日氣), 서력(西曆) 등을 앞에 적고, 이어 전 직원의 사진(仕進), 휴가 등 모든 동향을 기록한 다음, 중앙 관아 및 지방 관아, 각 개항장의 해관과 감리서, 각국 영사관, 청국 이사부 등과 주고받은 조회(照會), 조복(照覆), 내조(來照), 내전(來電) 등의 공문의 내용이 아주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수세와 경비 지급 등 재정 관계가 중심이며, 중앙 관아 특히 의정부, 통리기무아문, 호조와의 거래 문건이 많이 들어 있다. 매월 초에는 지난달의 수세 상황을 중앙의 각 기관에 보고하였다. 방곡령에 관련된 기록과 상인과 어민들 간의 분규 내용도 다수 엿볼 수 있다. 특히 종종 확인되는 조선 상인과 일본 상인 간의 부채 문제는 조선과 일본 양국 간의 외교 문제로까지 확대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일본 상인에 대한 노조(路照)[여행 통행증]의 발급과 구문의 징수, 상사 설립, 개항장 객주의 활동, 인삼의 잠매 등 개항기 부산을 중심으로 행해지던 조선 상인과 일본 상인의 상업 활동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호열자 발생과 관련된 내용도 있다.
이 자료는 시기적으로 1888년의 부산항 감리서의 일록을 기록하고 있는 『부산항 감리아문 일록(釜山港監理衙門日錄)』에 이어지는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부산항 감리서 일록』은 개항기 부산항 감리서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과 재정 상황뿐만 아니라 당시 부산 및 경상남도 일대에서 발생하였던 조선 상인과 일본 상인 간의 여러 분쟁 사건과 부산항 거주 일본인들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