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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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命九記念碑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for O Myeonggu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낙동북로663번길 55[구포동 1020-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철욱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낙동 북로에 있는 1956년 구포중학교 설립에 공헌한 오명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1950년대 당시 부산시 북구 일대에는 중등교육 기관이 없어 지역 청소년들이 부산 시내까지 통학해야 하는 불편이 많았다. 오명구(吳命九)[1916~1962]를 비롯한 지역 유지들이 학교설립기성회를 조직해 1953년 학교를 설립하고, 1956년 경상남도에 기증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구포중학교 학도호국단이 1956년 10월 5일 오명구 기념비(吳命九記念碑)를 세웠다.
[위치]
오명구 기념비는 부산광역시 북구 낙동 북로 663번길 55 가람중학교 교정에 있다. 원래 학교 이름은 구포중학교이었으나, 2001년 가람중학교로 바뀌었다.
[형태]
비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낮은 지대석에 높이 152㎝, 너비 46㎝, 두께 45㎝로 사면의 길이가 거의 비슷한 방형의 기념비이다. 별다른 장식은 없다. 뒷면에는 구포중학교 학도호국단의 기념비 건립 경과와 의미를 기록하였다.
[금석문]
비석의 전면에는 ‘설립기성회장 오명구 씨 기념비(設立期成會長吳命九氏記念碑)’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국가 민족의 운명이 교육으로 좌우됨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해방 덕택에 분읍에도 국민교만 둘 증설되었을 뿐 이 국민교 졸업생이 진학할 중학 하나 없어 극난한 교통의 애로를 무릅쓰고 부산 등지로 진학의 길을 찾아 헤매는 실정을 차마 볼 수 없어 유지 여러분 중 오맹구[오명구의 오자: 필자 주] 님은 설립비의 절반을 자담키로 하고 본 중학을 기성하여 86년 4월 25일 개교케 되었으니, 어찌 그 공이 천추에 빛나지 아니하리. 길이 그 정신 잊지 말지며 아울러 기성회원 여러분과 특히 실무에 노고가 많았던 곽종기 님 외 여러분의 거룩한 뜻 잊지 말자고 돌과 마음에 함께 새기나이다. 단기 사이팔구(四二八九)년 10월 일. 구포중학교 학도호국단 근수”라고 되어 있다.
좌측면에는 설립기성회 조직과 회원 명단[設立功勞者 期成會 主要幹部 副會長 尹洪國 尹義驅 總務部長 李炳文 財務部長 朴健資 營繕部長 林基泰 初代校長 嚴龜鉉 二代校長 金晧民]이 실려 있다. 그리고 우측면에는 찬조자 명단과 금액이 기록되어 있다. 오명구가 가장 많은 73만 원을 찬조하였다[贊助芳名 一金 七拾參萬圜 吳命九 貳拾萬圜 許元道 拾五萬圜 釜山製紙龜浦工場 拾貳萬圜 金永周 拾萬圜 朴健資 五萬圜 曺秉鎬 仝 東和製紙株式會社 貳萬五阡圜 金鍾善 壹萬五阡圜 朴春奉 一金壹萬五阡圜 尹學權 仝 尹成度 仝 劉秉在 壹萬圜 尹義駒 仝 金健實 仝 崔尙龍 仝 李元逑 七阡圜 吳相福 五阡圜 李炳文 一金五阡圜 林基泰 仝 嚴龜鉉 仝 崔壽明 仝 李小壽 仝 金谷琯 仝 薛慶海 仝 金晋坤 仝 張學立 仝 孫外文].”
[현황]
현재 기념비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오명구 기념비는 기록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어 향토사 연구의 자료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