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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892
한자 東萊鄕校考往錄
영어의미역 Documents on Dongnae Neo-Confucian School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명륜동 235]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동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782~1900년연표보기 - 동래향교 고왕록 저술
발견|발굴 시기/일시 1985년연표보기 - 동래향교 고왕록 발굴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16일연표보기 - 동래향교 고왕록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동래향교 고왕록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소장처 동래향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명륜동 235]지도보기
간행처 동래향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명륜동 235]지도보기
발견|발굴처 동래향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명륜동 235]지도보기
성격 고도서
편자 동래향교
간행자 동래향교
권책 1책[권3]
규격 37㎝[세로]|21㎝[가로]
권수제 고왕록(考往錄)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정의]

조선 후기~개항기까지 동래향교와 관련된 중요한 일을 살펴서 정리, 기록한 책.

[개설]

동래향교는 처음에는 성 동쪽 800m[2리]에 있었으나, 1704년(숙종 30)에 부(府)에서 동쪽으로 수백 보가량 되는 관노산(官奴山) 밑으로 이건되었다. 1744년(영조 20) 다시 증산(甑山) 아래로 이건하였다. 동래향교 「반화루(攀化樓) 기문」에 의하면, 1784년(정조 8)에 안산(鞍山) 아래로 이건하였다. 1813년(순조 13) 서쪽 성 밖의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이처럼 동래향교가 여러 차례 장소를 옮김에 따라 『동래향교 고왕록(東萊鄕校考往錄)』에도 특히 이건에 관련된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1985년에 동래향교 전교이던 김해진이 발굴하였다. 2008년 12월 1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동래향교 고왕록동래향교와 관련되는 중요한 과거의 내용을 비망기 형태로 적은 것이다. 권3이 1782년(정조 6)부터 시작되므로, 권1과 권2는 그 이전 시기부터 기록된 것으로 본다. 새로 발견된 기록을 추가하는 것 외에는 거의 시기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시기가 바뀐 것도 있다. 1804년(순조 4) 대성전 상량문을 추가 기록하면서 책머리의 영건 기록의 착오를 바로 잡은 것이 있다. 이는 한꺼번에 정리된 것이 아니고, 수시로 추가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서지]

원래는 3책 이상이지만, 현재는 1책만 남아 있다. 필사본으로 세로 37㎝, 가로 21㎝이다. 표지에는 ‘고왕록 권삼’, 그리고 기유년 윤4월에 가의(加衣)했다고 적혀 있다. 기유년은 1849년(헌종 15)이다. 이 해에 책 겉장을 다시 고쳤음을 알 수 있다. 1989년에 경성대학교 향토문화연구소에서 『동래향청고왕록』과 함께 영인본을 출판하면서 국역 간행하였다. 현재 동래향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1782년부터 1900년까지의 동래향교 관련 문서 95건이 초록되어 있다. 동래향교와 관련된 각종 영건(營建) 사적, 통문(通文), 추록(追錄), 등본(謄本), 보장(報狀), 품목(稟目), 정장(呈狀), 축문, 상량문, 별록(別錄), 서목(書目), 상서(上書), 감결(甘結), 고목(告目), 절목(節目) 등 각종 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문서 제목 없이 날짜만 기록된 것도 있다. 1784년 11월 15일 동래부사 이이상(李頤祥)이 지은 대성전 상량문, 1773년(영조 49) 동래부사 이석재가 지은 대성전 중수 상량문이 수록되어 있다.

동래향교에 보내온 사림의 각종 통문, 향교 이건 관련 문건, 특정 개인 집안의 문서를 고왕록에 등재해 주기를 청하여 추록된 문서, 동래향교 재정 규정, 향교 교임(校任)의 선출과 그 신분에 관한 규정 등이 주된 내용이다. 특히 1784년 동래향교 이건에 관한 기록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동래향교 영건 내용에는 책임을 맡은 향반, 담당 색리, 도대목과 부목, 감역(監役), 취반(炊飯), 재목 고지기[창고지기] 등의 명단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동래 지역의 향교 연구는 물론이고, 동래 지역 향권에 관계한 향촌 사회 향반의 동향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관방으로서의 동래의 특성과 그 사회 구성의 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크다. 또한 유일본이므로 서지학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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