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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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陳聖一追慕碑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for Jin Seongil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3동 314-7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성환 |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 3동 경성대학교에 있는 1987년 분신 투신한 진성일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진성일 추모비(陳聖一追慕碑)는 1986년 11월 5일 건국대학교 농성 사건 해명 등을 호소하며 분신 투신한 진성일(陳聖一)[1964~1986]을 추모하여, 1987년 11월 4일 경성대학교 학우들이 중심이 되어 기금을 모아 건립하였다.
[위치]
진성일 추모비는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 3동 314-79번지 경성대학교 구내 문화관과 계단 사이에 있다.
[형태]
높이 약 1.7m 규모이며, 기단부는 4단으로 쌓은 백색 직육면체이다. 기단부의 맨 윗돌에 추모비를 세우는 취지를 새기고, 다시 그 위에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직육면체의 돌을 얹고 가운데 직사각형의 검은색 대리석 바탕에 ‘민주 열사 진성일 추모비’라고 새겼다. 뒷면에는 ‘죽음에 의해 꽃다이 맺히는 생명이여’라는 추모시와 추모비 건립 취지문을 세로로 새겼다.
[금석문]
“추모비를 세우며. 고 진성일 민주 열사는 1964년 1월 26일 부산에서 태어나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부산산업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하였다. 1986년 11월 5일 낮 12시 45분경 ‘민족 분단 영구화하는 군부 독재 물러가라’, ‘민족의 피 빨아먹는 미 제국주의 물러가라’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부산산업대학교 문과 대학관 5층 옥상에서 몸에 신나를 끼얹고 분신 투신, 인근 재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곧 숨지었다. 이에 열사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고자 부산산업대학교 학우들이 여기에 비를 세운다. 1987년 11월 4일.”
“죽음에 의해 꽃다이 맺히는 생명이여. 여기/ 묶인 삶에 타협함이 없이/ 허위와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의 어둠을 깨치며/ 의연히 죽어 간 그대/ 제 생명 소중한 줄 알고/ 제 살붙이 사랑한 그였지만/ 압제의 늪에서 한 목숨 이어/ 도적을 살찌우고/ 강요된 거짓 윤리에 순응하여/ 반역의 무리 앞에 머리 조아리느니/ 스스로 제 목숨의 질긴 줄을 끊고/ 애통하는 땅 위에 고운 피 흘리었다/ 가득 찬 밥으로도 채울 수 없었고/ 넘치는 술로도 달랠 수 없었던/ 주림과 목마름은/ 살아 있는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건만/ 갇힘을 통해 비로소 열리는 자유/ 죽음에 의해 꽃다이 맺히는 생명/ 이 뒤집힌 역사의 현실 속에서/ 우리 어찌 그대를 죽음이다 말하랴/ 아 아 진성일 민주 열사여/ 그날/ 가슴을 쥐어뜯는 오열 속에서/ 불살랐던 것은 그대의 죽음이 아니라/ 다만 그대 벗어 놓은 껍데기였을 뿐/ 그날/ 치 떨리는 노여움에 목 놓아 불렀던 노래는/ 그대 되돌아옴을 보며/ 움켜쥔 투쟁의 다짐이 아니던가/ 도살당한 민주의 되살아남/ 동강 난 이 땅의 통일/ 억눌리었던 민중의 해방을 위해/ 열사여 우리 그대와 함께 나가니/ 아 아 새날 새 땅이 열린다. 분단 조국 43년 11월 어느 학우의 글을 돌샘 적다.”
[현황]
경성대학교가 소유하여 관리를 맡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진성일 추모비를 통해 지난 역사를 되새겨 보며, 아울러 현재를 살아가는 학생들은 민주화 운동이 치열하였던 지난 시기의 역사를 되돌아봄으로써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