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848 |
---|---|
한자 | 回東水源池六二五戰爭期民間人虐殺 |
영어의미역 | Civilian Massacre in the Korean War in Hoe-dong Catchment Area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오륜동 회동 수원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진 |
[정의]
1950년 7~8월 부산광역시 금정구 오륜동 회동 수원지 입구에서 국민보도연맹원이 학살된 사건.
[역사적 배경]
1949년 결성된 국민보도연맹은 국가 주도로 과거 좌익 경력자들의 교화와 관리를 담당한 단체이다. 그러나 6·25 전쟁 발발 직후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을 예비 검속하여 집단 학살하였고, 이때 동래 지역에서도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였다.
[경과]
부산광역시 동래구[당시 경상남도 동래군] 지역 국민보도연맹원이 예비 검속된 것은 1950년 7월 초로 동래경찰서 유치장과 경찰서 맞은편 소방서 건물에 구금되었다. 이들은 심야에 7~8명씩 철사에 묶인 채 트럭에 실려 학살 장소로 옮겨졌다. 1960년 송철순, 김세룡, 한원석, 추월량 등이 결성한 동래유족회에서는 동래경찰서 소속 경찰관으로부터 학살 현장을 알아내어 회동 수원지 입구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운봉 마을, 해운대구 우동 산기슭 등지에서 모두 713구의 유골을 찾아냈다. 특히 회동 수원지에서는 창이 턱을 뚫고 들어가 정수리로 관통해 나온 두개골이 나와 작업 인부들이 놀라 달아나는 일이 벌어졌다. 또 도장과 가죽 지갑 등 유품 상당수가 발견돼 피해자 신원이 일부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정확히 몇 명이 살해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결과]
1960년 동래유족회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만들어 곽상훈(郭尙勳) 국회 의장을 만나 제출하였고, 장면(張勉) 총리로부터 50만 원을 지원받았다. 이 돈으로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 화지산 능선에 합동 분묘를 만들고 10월 28일 합동 위령제를 지냈다.
[의의와 평가]
동래유족회가 학살 당사자[당국]로부터 학살 현장을 알아내어 일부 피해자의 신원까지 확인한 일은 1960년 당시 유족회 활동의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 준다. 특히 회동 수원지에서 창에 찔린 두개골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국민보도연맹원들이 현장에서 잔인하게 살해되었다는 증거로, 학살의 방법까지 생생하게 밝혀 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