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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829
한자 洪侃
영어음역 Hong Gan
이칭/별칭 자운(子雲),평보(平甫),운부(雲夫),홍애(洪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영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인|문신
성별
본관 풍산(豊山)
대표관직|경력 원주 목사|동래 현령
활동 시기/일시 1266년 - 과거 급제
몰년 시기/일시 1304년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홍간 출생지 - 경상북도 안동시
거주|이주지 홍간 거주지 - 경상북도 안동시
수학|강학지 홍간 수학지 - 경상북도 안동시
묘소|단소 홍간 묘소 - 경상북도 안동시

[정의]

고려 후기 동래 현령을 지낸 시인이자 문신.

[가계]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자운(子雲)·평보(平甫)·운부(雲夫), 호는 홍애(洪崖). 아버지는 안동 풍산에 정착한 풍산 홍씨(豊山洪氏)의 시조인 홍지경(洪之慶)이다. 홍지경은 1242년(고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국학 직학(國學直學)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순천 김씨(順天金氏)이고, 부인은 삼가 오씨(三嘉吳氏)이다. 동생 홍비(洪備)는 추밀사(樞密使)를 역임하였고, 아들 홍유(洪侑)는 밀직사(密直使) 삼관(三館)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활동 사항]

홍간(洪侃)[?~1304]은 1266년 과거에 급제한 뒤 원주 목사(原州牧使), 비서윤(秘書尹), 도첨의 사인(都僉議舍人), 지제고(知制誥)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언사(言事) 때문에 동래 현령(東萊縣令)으로 좌천되었다가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동래 현령으로 좌천된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홍간이 왕 앞에서 바른말을 하다가 노여움을 받아 내쳐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학문과 저술]

현재 전하는 홍간의 작품은 한시 29제(題) 42수가 전부인데, 이것들도 『삼한 시귀감(三韓詩龜鑑)』, 『동문선(東文選)』, 『청구 풍아(靑丘風雅)』, 『대동 시림(大東詩林)』 등에 수록된 작품을 홍간의 12세손인 홍방(洪滂)이 엮어서 『홍애집(洪崖集)』으로 펴낸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홍간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다. 이제현(李齊賢)은 『역옹패설(櫟翁稗說)』에서 홍간의 시가 발표될 때마다 뛰어나서 당대의 사대부 사회에 널리 퍼졌던 사실을 밝히면서, 홍간은 시문을 짓는 바른 도리를 가졌다고 언급하였다.

허균(許筠)은 『성소 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홍간 시의 우수함을 밝혔고, 『성수 시화(惺叟詩話)』에서는 홍간의 시가 번성하고 화려하며 맑고도 곱다고 칭송하였다. 남용익(南龍翼)은 『호곡 만필(壺谷謾筆)』에서 홍간의 시가 화려하다는 것을 특징으로 꼽았다. 홍만종(洪萬宗)은 『소화 시평(小華詩評)』에서 고려에는 송시풍 일변도로 흐를 때 홍간은 당시풍으로 시를 썼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였고, 작품 역시 맑고 깨끗하며 초월적이면서도 미끈하게 고운 특성을 지녔다고 보았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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