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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리 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822
한자 安平里敎會
영어의미역 Anpyeong-ri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안평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 시설
설립자 왕길지 목사 등
설립 시기/일시 1902년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미상
최초 설립지 안평리교회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안평리 225-21, 225-22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안평리에 있었던 교회.

[설립 목적]

안평리 교회는 기장 지역이 가진 민족정신을 신앙 공동체를 통해 결합하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1902년에 부산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다. 호주 선교사 왕길지(王吉志) 목사 부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 사기』에 의하면 “1902년에 동래군 안평리 교회가 성립하다. 초에 박신연(朴信淵), 정덕생(鄭德生), 정희조(鄭喜祚), 정덕선(鄭德善), 박도주(朴道柱) 등이 신교(新敎)함으로써 교회가 성립되니라”라고 적혀 있다. 안평리 교회부산 기장군 철마면 안평리 225-21번지, 225-22번지에 있었으나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터에는 커다란 감나무만이 있다.

안평리 교회 초대 출신으로 왕길지 선교사와 함께 철마교회를 비롯하여 기장교회, 동래 수안교회 등 낙동강 이남에 40여 개의 교회를 세운 정덕생이 있다. 교회가 세워진 안평은 신명역과 함께 여관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곳이었다. 초기에 선교할 때는 예방 접종도 하면서 의료 선교도 함께 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길지 선교사 일기』에 “1902년 4월 21일에 4개월 된 젊은 박씨 아들에게 예방 접종을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같은 해 11월 29일에는 “예배를 마친 후 안평의 박씨 영감님이 사람을 보내어 그가 말에서 떨어졌는데, 와서 치료해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내일 가겠다고 대답했다”는 사실도 보인다.

[의의와 평가]

기장 지역은 민족주의가 강한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 민족정기를 보존하고 지역민을 신앙 중심으로 단합시키고자 건립한 것이 안평리 교회이다. 부산의 초기 교회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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