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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민주화[자율화]추진위원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759
한자 學園民主化-自律化-推進委員會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학로63번길 2[장전동 산30]|서구 동대신동 3가 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오재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생 운동 단체
설립자 신재식|전찬수
설립 시기/일시 1980년 2월 26일연표보기 - 부산대학교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 결성
설립 시기/일시 1980년 4월 4일연표보기 - 동아대학교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결성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 5월 8일 - 동아대학교 총학생회 출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 3월 28일 - 부산대학교 학도호국단 총사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 4월 2일 - 부산대학교 학원 민주화 결의문 채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 4월 29일 - 부산대학교 단과 대학 학생회장 선거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 5월 16일 -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
최초 설립지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산 30 부산대학교
최초 설립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3가 1 동아대학교

[정의]

1980년 초 학내 민주화를 위해 부산 지역 대학에 설립된 학생 조직.

[설립 목적]

학원민주화[자율화]추진위원회는 1980년 봄 학생들의 직접 선거에 의한 학생회를 부활하여 학도 호국단을 해체하는 등 대학 내의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제반 활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부산대학교, 동아대학교 등 부산 지역 대학에서 설립되었다.

[변천]

유신 정권의 붕괴로 찾아온 1980년 ‘민주화의 봄’에 전국 각지의 대학가는 학원 민주화를 위한 노력으로 분주하였다. 그리고 이는 진정한 학생 대표 기구로서 총학생회를 부활시키는 데서 시작되었다. 부산대학교에서는 2월 26일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3월 8일 부산대학교 학생대표자회의를 발족하여 학칙 개정을 통해 총학생회와 단과 대학 학생회를 부활하였다.

동아대학교에서는 4월 4일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5월 8일 총학생회를 출범시켰지만 학도 호국단 역시 존속하였다. 4월 4일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 4월 14일 동의공업전문대학[현 동의과학대학], 5월 12일과 13일 부산공업전문대에서도 학칙 개정을 통한 총학생회 부활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다. 하지만 5월 17일 자정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무기한 휴교령에 의해 학원 민주화는 정지되었다.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부산 지역 대학가의 총학생회의 부활은 없던 일로 되었고, 학도 호국단 규칙이 새로 공포되면서 학도 호국단 체제는 되살아났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학원민주화[자율화]추진위원회의 주요 사업은 학칙 개정을 통한 총학생회의 부활을 중심으로, 서클 활동의 자유, 경찰의 학원 사찰 중단, 학내 언론 자유의 회복과 같은 학원의 자율성 회복과 민주화의 추진이었다. 이를 위해 부산대학교에서는 2월 26일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를 결성[의장 신재식 사회복지 3년]하고, 3월 8일에 59개 학과의 학회장 및 1학년 계열 대표로 구성된 ‘부산대학교 학생대표자회의’[약칭 ‘대표자회의’]를 발족하였다.

학도 호국단이 이 결정을 지지하며 총사퇴하자, ‘부산대학교 학생대표자회의’는 4월 2일 ‘제1차 학원 자율화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하여 학생회의 부활, 지도 교수제의 폐지, 서클 집회 활동의 자율화, 학칙 개정, 학내 언론 자유의 보장 등 11개 항의 ‘학원 민주화 결의문’을 채택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칙과 선거관리위원회 및 총학생회장 선거 일정을 확정하였다. 이후 다소 간의 곡절을 거쳐 ‘부산대학교 학생대표자회의’의 새로운 집행부[의장 유기천 기계설계 3]가 구성되고, 4월 29일 단과 대학 학생회장 선거가 마무리되었다. 5월 7일 부산대학교 학생대표자회의는 ‘10·16 정신’이 삽입된 전문을 포함한 학생 회칙을 통과시켰다. 5월 16일 선거를 통해 이창훈[기계설계공학과], 황대연[법학과]이, 총여학생회장에는 이정희[의류학과 3년]가 당선되어 총학생회 출범을 앞두게 되었다.

그러나 5월 17일 자정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로 전두환(全斗煥) 신군부의 집권 시나리오가 시작되자, 학교는 무기한 휴교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5월 8일 새로 선출된 단과 대학 회장단은 ‘시국에 관한 공개 토론회’를 열고 계엄 해제와, 이원 집정제의 중지, 노사 분규의 평화적 해결, 학원 사찰의 중지 등을 요구하는 10개 항의 ‘구국 선언문’을 채택하고 “계엄 해제하라”, “유신 잔당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으며, 100여 명이 문창 회관에서 철야 농성을 하였다. 14일에도 시국 대토론회를 열기도 하였다.

동아대학교에서도 4월 4일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위원장: 전찬수, 법학과 4년]를 구성하고, 12일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칙 개정 공청회를 열고 총학생회 부활, 족벌 운영 지양, 등록금 인하 등을 결의하였다. 이후 선거를 통해 5월 8일 신해주[철학과 3년]를 총학생회장으로 하는 학생 자치 기구가 출범하였지만, 학도 호국단이 존속한 탓에 양 기구가 병존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도 4월 4일 600여 명의 재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선거 공청회가 열려 직접 선거를 통한 총학생회장 선출을 결의하였다.

4월 9일에는 부산수산대학 학생 1,000여 명이 교문을 잠그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시킨 상태에서 재임용에 탈락한 교수의 복직, 학원 내 언론 출판의 자유, 서클 활동의 자율화, 호국단 간부들의 사과, 학칙 개정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4월 14일 동의공업전문대학[현 동의과학대학] 300여 명의 학생은 학칙 개정 등 18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농성을 벌였고, 5월 12일과 13일 1,500여 명의 부산공업전문대학의 학생들도 학칙 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전개하였다.

[의의와 평가]

1980년 봄 학원 민주화 운동은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학생 대중의 참여를 통한 학칙의 개정과 학생 자치 기구의 부활에 성공함으로써 4·19 혁명 이후 가장 적극적인 학생 자치 조직 활동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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