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표민 수수소 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738
한자 漂民授受所-
영어의미역 Center for Guiding Drifters
이칭/별칭 표류민 수수소 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동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공관
소재지 우암포 -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동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 우암포에 있던 표류민 송환 장소.

[개설]

조선 후기 조선에 표착한 일본인은 크게 대마도(對馬島) 출신인 마도 표왜(馬島漂倭)와 대마도 이외 지역 섬 출신인 타도 표왜(他島漂倭)로 나뉜다. 부산진, 통영, 거제, 제주, 여수 등지에는 일본어 통역관이 있어서 표선(漂船)에 대한 조사가 쉽게 이루어졌다. 일본인이 표착하면 표착지에서 간단한 조사를 한 후 동래부로 회송하여 정식으로 조사를 하였다. 쓰시마 섬 출신 표류민은 곧바로 부산에 있는 왜관으로 회송하였다가, 조사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대마도로 송환하였다. 대마도 출신이 아닌 경우는 표민 수수소(漂民授受所)에 체류하였다.

그리고 배가 부서지지 않은 경우 표민들은 배에 탄 채 예조에서 송환 서계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파선된 경우에는 부득이 우암포(牛岩浦) 해안에서 머물렀는데, 이곳이 표민 수수소로 보인다. 우암포에 일본인 표류민의 숙식을 위한 별도의 특정한 수용 시설이 있었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우암포에 체류하는 동안 그들이 소비하는 생선, 채소, 곡식 등은 동래부나 그 주변 포구 읍민이 부담하였다. 표류민이 귀국할 때는 조선 측이 송별 잔치를 열어 주었는데, 우암포 해안가에 소옥(小屋)·가옥(假屋)을 설치하고 막을 둘러쳐 하였다. 소, 돼지, 닭 등을 대접하고 전별 선물도 지급하였다.

[변천]

대마도 출신이 아닌 표류민은 표착지에서 조사가 끝난 후에도 왜관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초량, 용당, 감만, 우암포 근처의 앞바다로 옮겨져 선상에서 체류하였다. 1707년(숙종 33) 김해 명지도에 표착한 치쿠젠[筑前] 표류민 3명을 다대포에서 우암포로 옮기고 양식을 지급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일본인 표류민들이 머무는 장소가 우암포로 정비되었다. 이후의 변천 상황은 알 수 없다.

[위치]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동에 있던 곳으로, 당시에는 우암포라 하였다.

[의의와 평가]

표민 수수소 터를 통해 조선 후기 조선에 표착(漂着)한 일본인, 특히 대마도 외 지역 표류민의 송환 실태를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