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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576
한자 石城山城-
영어의미역 Fortress Site of Seok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남부민동|사하구 감천2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나동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
발굴 조사 시기/일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소재지 석성 산성 터 소재지 -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남부민동|사하구 감천 2동 경계 일원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천마산 정상에 있는 조선 전기 이전의 수 또는 봉수대의 방호벽으로 추정되는 성.

[변천]

석성산(石城山)이란 지명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 산천조에서 보이는데, 석성산은 “동래부의 남쪽 40리[약 15.71㎞]에 있는데 옛날에 봉수가 있었으나 현재는 구봉으로 옮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석성산은 위치상으로 볼 때 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 남서쪽에 있는 천마산(天馬山)[322.3m]으로 사하구 감천동과 경계를 이룬다.

석성산의 명칭이 현재의 천마산으로 바뀐 것은 예부터 이곳이 이름난 목마장으로 하늘[天]에서 용마(龍馬)가 내려와 서식할 정도로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산이라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석성산 주위가 조선 시대 때 말을 기르는 목마장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색이 그린 『목장 지도(牧場地圖)』[1663]를 보면 현재 부산광역시 사하구 당리동괴정동에 남아 있는 오해야항 목장의 중성(中城) 성벽이 옛 부산시청이 있던 용미산의 서남쪽과 천마산 사이로 이어져 남항 쪽으로 연결되고, 현재 확인된 오해야항 목장성의 중성 성벽이 동주대학교 뒷산 골짜기에서 대티 터널 쪽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천마산 쪽으로 연결되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천마산에 성이 있었기 때문에 석성산이란 명칭이 붙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1418년 오해야항 목장 설치 이후 또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25]에 보이는 조선 전기 봉수대 설치 이전에 석성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석성산에서는 부산의 남항과 북항 쪽으로 출입하는 선박이 모두 보이며, 남해 쪽은 물론 멀리 쓰시마 섬까지 한눈에 바라보이는 위치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조선 시대 이전부터 자주 출몰하였던 왜구의 감시를 위한 수(戍)[국경이나 군사적인 주요 거점에 소규모로 쌓은 성곽 시설]나 봉수대의 보호를 위한 방호벽이 축조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조선 전기 봉수의 축조나 송신소 설치와 관련하여 성벽이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치]

석성 산성 터부산광역시 서구 초장동, 남부민동, 사하구 감천 2동의 경계 지점인 천마산 정상을 중심으로 서남쪽 일부와 동북쪽 송신소 탑 주변으로 추정한다.

[현황]

천마산 정상부에는 조선 전기 봉수 노선 중 하나인 석성산 봉수 터가 남아 있으며, 중심부에는 산악회에서 복원한 봉수대가 있다. 이 봉수대의 동북쪽 송신소 주변에는 석재들이 흩어져 있으며, 서쪽 능선 쪽에서는 조선 시대 이전의 토기 및 자기나 기와 조각 등이 보이고 있어 조선 시대 이전부터 정상부에는 봉수대의 방호벽 또는 성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높이 1m, 둘레 약 30m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석성 산성 터는 주변에서 수습되는 유물이나 동·남해 주변이 모두 조망되는 위치상으로 볼 때 조선 시대 이전부터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 시설이 부산 지역에 운영되었던 사실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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