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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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箭洞相助契 |
영어음역 | Jangjeon-dong Sangjogy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에 있었던 상조 계 단체.
[설립 목적]
상리 마을은 장전동의 위쪽에 있는 자연 마을로 ‘웃마을’이라고도 불리던 곳이다. 지금의 도시 철도 1호선 장전역 왼쪽 까치 공원에서 장전 1동 주민센터 위쪽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상리 마을은 전통 마을 조직 강화를 위해 상조계가 있었다. 상조계는 1905년 이후 일제 강점기 식민지 정책으로 농촌 경제가 극도로 궁핍할 때 마을의 선각자인 문식주, 박영조, 문봉엽 등이 마을 경제 부흥에는 주민 각자가 근면 절약하고 상호 부조하는 것이 농촌 경제 부흥의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마을 주민을 설득하여 상조계를 조직하였다.
[변천]
1930년 조선총독부 지시로 전국 산업 조합을 설립하고, 1933년 동래산업조합 산하에 식산계(飾産界)를 조직 운영하였다. 당시 마을 부업 융성으로 가마니 가공 기계를 계원에 공급하여 공동 생산, 판매로 전국 최우수 마을로 지정되어 최우량 모범 식산계가 되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각처에서 전입으로 인구가 팽창되자 상리 마을 유지들은 선현의 유덕을 추모하며 후손에게 충효 사상과 미풍양속을 진작케 하고 마을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산당의 제의를 맡아 마을 발전과 행복을 찾는 이인계(里仁契)를 다시 계승 조직하였다. 이인계는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인정이 넘치는 상부상조, 퇴폐풍조 일소, 관혼상례 간소화, 문맹퇴치 운동 등 마을 사업을 주도하였다. 1980년 이인계는 인화회(仁和會)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다음과 같은 3개 항의 목표를 수립하여 실천하였다. 1. 허식 퇴폐풍조를 일소하여 관혼상제비를 절약하고, 2. 농민 계몽 운동으로서 야학을 권장하여 문맹을 일소하고, 3. 가마니 가공 생산 등 양돈 양계로서 농민 부업을 장려하고 절미 운동(節米運動)을 전개하여 저축 증강에 주력하여 농가 소득 증대에 기한다.
[현황]
이인계에서 상리 마을의 전기 점등식이나 상수도 수통식 등 눈부신 성과를 자축하고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인계 계원 87명의 성금 갹출로 1962년 5월 1일 이인비를 마을 입구 당산나무가 있는 이인정[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129-8]에 건립하였다. 이인비는 2010년 11월 24일 택지 재개발로 장터 식당[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 1동 204-1번지] 마당으로 옮겼다. 현재는 70여 명의 회원이 있다.
[의의와 평가]
장전동 상조계는 지연과 혈연의 자생적 협동체로 마을의 안전, 생산력 증대, 재해 예방, 저축 증강 등 생존 전략까지 주력하여 성과가 아주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