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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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燕子- |
영어의미역 | I Hope My Lover Will Become a Swallow |
이칭/별칭 | 「모심기 소리」,「모심기 노래」,「등지」,「모숭는 소리」,「모숭는 노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해운대구|금정구 |
집필자 | 류경자 |
성격 | 민요|노동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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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 메나리 토리 |
기능구분 | 농업 노동요|모심기 소리 |
형식구분 | 교환창|독창 |
가창자/시연자 | 김남선[여, 56]|박차순[여, 88]|강분이[여, 76]|조일선[여, 76]|정복순[여, 71]|박춘금[여, 74] |
채록 시기/일시 | 1992년 1월 3일 - 김남선[여, 56]·박차순[여, 88] |
채록 시기/일시 | 1992년 1월 13일 - 강분이[여, 76] |
채록 시기/일시 | 1999년 10월 31일 - 정복순[여, 71]·박춘금[여, 74] |
채록 시기/일시 | 2000년 10월 1일 - 조일선[여, 76]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2년 12월 10일 - 김승찬·박경수·황경숙 공저, 『부산 민요 집성』에 수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0년 2월 28일 - 류종목 저, 현장에서 조사한 구비 전승 민요에 수록 |
채록지 | 지사동 -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 |
채록지 | 가리새 마을 -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
채록지 | 송정동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
채록지 | 두송 경로당 -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두송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해운대구, 금정구 지역에서 모심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개설]
「임이 죽어서 연자가 되어」는 부산 지역에서 논에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모심기 소리 중 하나이다. 「임이 죽어서 연자가 되어」는 모심기 과정의 전반에 걸쳐 시간적 제약을 거의 받지 않고 불리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를 「모심기 소리」, 「모심기 노래」, 「등지」, 「모숭는 소리」, 「모숭는 노래」 등이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김승찬·박경수·황경숙 등이 집필하고 세종출판사에서 발행한 『부산 민요 집성』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공저자들이 1992년 1월 3일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 주민 김남선[여, 56]과 박차순[여, 88], 1992년 1월 13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주민 강분이[여, 76], 그리고 2000년 10월 1일 강서구 범방동 가리새 마을 주민 조일선[여, 76] 등으로부터 각각 채록한 것이다.
또한 2010년 류종목이 집필하고 민속원에서 간행한 『현장에서 조사한 구비 전승 민요』-부산편의 138쪽에 실려 있다. 이는 1999년 10월 31일 류종목이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두송 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정복순[여, 71]과 박춘금[여, 74] 등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임이 죽어서 연자가 되어」는 모심기 소리로 일반적으로는 남녀 교환창으로 불린다. 교환창은 두 팀으로 나뉘어 부르는데, 의미가 있는 앞 사설을 한 팀이 부르고 나면, 다른 한 팀이 받아서 의미가 있는 뒤 사설을 부르는 것이다. 모심기 소리는 모를 심는 동작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이므로 비교적 늘어지는 느린 가락으로 부른다. 영남 지역의 모심기 소리 가락은 ‘정자 소리’라고 하는 메나리 토리에 해당한다. 이 모심기 소리를 부산 지역에서는 ‘등지’라는 명칭으로 일컫는다.
[내용]
임이 죽어서 제비가 되어, 추녀 끝에다 집을 짓고 매일 드나드는 데도 임인 줄 몰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보자에 따라 노래 사설의 어휘 사용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임이죽어서 연자가되어 춘세끝에 집을지워/ 날면보고 들면봐도 임인줄은 내몰랐네[김남선·박차순의 노래].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모심기는 못자리에서 기른 모를 논에 옮겨 심는 일을 말하는데, 모내기라고도 한다. 모심기를 할 때는 먼저 논을 가로질러 못줄을 하나나 두 개 치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따라 늘어선다. 다음에 못줄에 맞춰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어 나간다. 일단 모심기를 시작하면 일정한 속도에 맞춰서 동시에 모를 심어야 한다. 따라서 모심기를 할 때에 「임이 죽어서 연자가 되어」를 불러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의 손을 맞추었다.
[현황]
사람들의 손에 의지해 모심기를 하던 시절 부산 지역의 모심기 소리는 대부분 남녀 교환창으로 불렀다. 그러나 오늘날은 노동의 현장을 벗어나 작위적 공간에서 채록을 하다 보니 교환창으로 불리는 경우보다는 독창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다.
[의의와 평가]
「임이 죽어서 연자가 되어」는 영남 지역뿐만 아니라 부산 지역에서도 역시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모심기의 현장에서 애창되고 있다. 「임이 죽어서 연자가 되어」는 일상의 고단함 속에 묻어나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로서 민중들로 하여금 옛 시절의 애잔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