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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409
한자 日本軍慰安婦
영어의미역 Comfort Women for the Japanese Troop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정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장소 제1위안소 - 부산광역시 영도구
관련 장소 제2위안소 -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
관련 장소 부산항 - 부산광역시 중구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연행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상태에 있었던 여성.

[개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한 이후 1932년 일본군 차원에서 설치된 ‘위안소’부터 시작하여 중일 전쟁, 아시아 태평양 전쟁기에 일본 정부 차원에서 제도화한 군 위안소에 이르기까지 이들 기관에서 남자들을 성적(性的)으로 위안하기 위하여 동원된 여성을 일컫는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정부 등록자 234명 중에서 확인된 부산[현재 행정 구역 중심] 출신자는 5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하여 부산에서 연행된 여성들의 수는 10여 명이나 된다. 이들은 대부분 부산 인근인 양산, 울산을 비롯한 경상도 출신자이다. 이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되기 전의 직업은 방적 혹은 제사 공장의 노동자, 가사 사용인[식모] 등이었다.

[동원 방식]

일본군 '위안부' 동원 방식은 취업 사기, 유괴 납치, 인신매매 등이 대종을 이루었다. 배치 지역은 부산, 중국, 대만, 베트남, 타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평양 제도[뉴브리튼, 축], 일본 등이다. 중일 전쟁 이후 대만, 중국 광동, 만주 등으로 간 여성 3명 이외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이후에 동원되었다. 철도[기차]를 이용한 만주와 중국 중북부 지역은 소수이고, 대부분이 배를 이용하는 지역으로 배치되었다는 점에서 부산에서 동원된 여성들은 부산항이란 지역성이 상당히 반영되었다. 이들은 성노예가 되는 지도 알지 못한 채 대부분 전쟁터 등지로 연행되어 일본군 '위안부'로 강요당하였다.

[부산항의 기능]

연행지(連行地)였던 부산에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 업자가 상주하고 있어서 부산뿐만이 아니라 전국 여러 지역의 업자와 연계하여 강제 동원한 여성들을 인도네시아 등지로 송출하였다. 부산은 중국 중남부, 동남아시아, 태평양 제도, 오키나와 등으로 일본군 '위안부'가 이송되는 관문이며 가장 비중이 큰 귀환 항구였다. 이 때문에 부산은 귀향하지 못한 많은 피해자들의 생활 근거지가 되었다. 피해자들이 부유하는 특징상 수많은 이들이 부산항을 거쳐 갔는데, 정부 등록자 중 부산을 최종 거주지로 하고 사망한 여성은 10명, 생존자[2011년 10월 현재]는 3명이다. 부산에는 윤두리 할머니[1928년 부산 출생]가 있었던 영도 제1 위안소, 대신동 부근엔 제2 위안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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