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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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虞美人歌 |
영어의미역 | Song of Yu Meire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
집필자 | 조수미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중리 마을에서 우미인과 항우의 이별 장면을 형상화한 민요.
[개설]
「우미인가」는 「초한가(楚漢歌)」와 함께 『서한연의(西漢演義)』로 알려진 『서한통속연의전(西漢通俗演義傳)』의 내용을 가창화한 가사(歌辭) 「우미인가」를 민요로 부른 비기능요이다. 가사 「우미인가」는 항우[초패왕]가 마지막 주연을 베풀면서 느끼는 망국의 한과 우미인에 대한 애절함, 그리고 우미인의 항우에 대한 절개를 그리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김승찬·박경수·황경숙 등이 집필하고 세종출판사에서 발행한 『부산 민요 집성』의 213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공저자들이 1993년 7월 22일에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중리 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홍위조[여, 80]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우미인가」는 독창으로 불린다. 사설은 초한(楚漢)의 역사를 소재로 하여 4음보격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천하동진 강동국에/ 산도 좋고 물도 좋다/ 아황년년 노던곳에/ 만고절색 고운얼굴/ 우미인이가 새로나서/ 초패왕에 부인인강/ 귀동여의 따님인강/ 십오십육 좋은시절/ 초패왕을 만났구나/ 장할시구 우리대왕/ 역발산 기개시라/ 하늘높고 달밝은데/ 덛꼬가고 구경하고/ 불현 사창 별당안에/ 반달겉은 처자두고/ 대권겉은 집놔두고/ 태산 겉은 부모두고/ 연당안에 딜당안에/ 반달겉은 처자두고/ 대왕님요 대왕님요/ 가지마오 가지마오/ 대왕따라 난도가요/ 대왕님요 바늘간데 실 안가나/ 대왕님요 나를 두고/ 가지마오 가지마오/ 대왕님요 가지마오/ 대왕따라 난도가요/ 대왕님이 가신후에/ 뒷도장에 맛존술은/ 어느대왕 맛을 보노/ 은상자야 놋상자야/ 금실겅에 얹어두고/ 대왕님이 가신후에/ 날과 같은 아녀자는/ 어는 곧에 없어가주고/ 대왕따라 난도가요/ 우미인이야 우지마라/ 대장부남자가 이력이 무엇이냐/ 죽어도 전장에가여 죽고/ 살아도 전장에가여 살고/ 대장부 이력이 그것인데/ 우미인이야 우지마라/ 이세상에 못만나면/ 후세상에 만나가주/ 부귀영화 좋은팔자/ 미인밖이 또있는강/ 널란죽어 궁기되고/ 날랑죽어 쟁피되고/ 오월이라 초단옷날/ 약숫물에 만납시더.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서사적 독서물이 가사와 민요의 형식으로 가창되어 향유되었다. 내방 가사(內房歌辭)에서 민요로 발전한 작품들은 양반 여성을 중심으로 향유되었는데, 주된 향유자들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감정이나 생활상이 사설에 녹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판소리 단가에서 민요로 발전한 작품의 경우에는 향유 계층이 남성이었던 까닭에 한자어투와 남성의 감정이 사설에 많이 녹아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현황]
「우미인가」는 내방 가사에서 민요로 변형되어 전하는 노래이므로 비기능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주로 부녀자들이 노동을 할 때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에는 부녀자들이 서로 모여서 베를 짜거나 길쌈을 하는 등의 노동을 했지만 현재는 그런 일들이 많지 않다. 또한 민요보다는 오히려 대중가요를 가창하는 경우가 많아 전승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우미인가」는 주로 필사나 음영을 통해 전승이 이루어져서 민요로의 변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상북도 청도군에 전하는 「보리타작 소리」에서 「우미인가」의 사설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 정도이다. 두구동 중리 마을에서 채록된 「우미인가」는 비록 거의 가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민요로 전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