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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311
한자 吳奎煥
영어음역 O Gyuhwan
분야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기장 향교 직원
출생 시기/일시 1985년 11월 20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김창숙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6년 3월 - 구금됨
활동 시기/일시 1931년 2월 - 기장 향교 근무
몰년 시기/일시 1935년 5월 6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오규환 출생지 - 황해도 해주시
거주|이주지 오규환 거주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활동지 기장 향교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계]

오태환(吳泰煥)과 6촌간이고 「장전 구곡가(長田九曲歌)」를 지은 추파(秋波) 오기영(吳璣泳)[1837~1917] 동생의 손자이다.

[활동 사항]

오규환(吳奎煥)은 1925년 8월경 김창숙(金昌淑)이 전개한 군자금 모금 활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김창숙은 파리 장서 사건 때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北京]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내몽골 지방의 미간지와 황무지 약 1,983.47㎢[20만 정보]를 매입하여 이상촌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즉 만주 지역 한인들을 결집시켜 개간 사업을 일으키고, 그 수익 자금으로 무관 학교를 설립하여 둔병식(屯兵式)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10년간의 실력 향상을 통하여 독립을 달성한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계획에 필요한 군자금 모금을 위해 김창숙이 1925년 8월 국내로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평소 항일 의식이 투철하던 오규환은 경상도 지역의 유림들과 더불어 군자금 모금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경상북도 경찰부에 발각되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1926년 3월부터 관계자 다수가 체포되었다. 이것이 영남 유림단(儒林團) 사건으로, 오규환도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3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기장 향교 청금록 자료철(機張鄕校靑衿錄資料綴)』에 “오규환은 해주 사람으로 철마면 와여리에서 신미년[1931] 2월에 향교 직원(直員)을 역임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1935년 5월 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 오규환의 공훈을 기려 199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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