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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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六島隣近海上六二五戰爭期民間人虐殺 |
영어의미역 | The Site of Civilian Massacre in the Korean War on the Waters of the Oryukdo Island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진 |
[정의]
6·25 전쟁 초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오륙도 인근 해상에서 국민보도연맹원 등이 집단 살해된 사건.
[역사적 배경]
1950년 7~8월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를 집단 살해하기 시작하였다. 학살은 주로 총살과 수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내륙의 야산 등지에서 사살할 경우 눈에 띄기 쉽고 매장도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부산이나 경상남도처럼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에서는 해상에서 사살하거나 산 채로 물속에 던져 수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과]
국민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들은 배에 실려 오륙도 근처 해상으로 끌려갔다. 선상에서 사살된 경우도 있었지만, 서너 명이 손발을 한데 묶인 채 수장된 경우도 있었다. 징발한 어선이 동원되었지만 미군 선박이 이용되었다는 증언도 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1950년 7월부터 8월 사이 경찰과 CIC[Counter Intelligence Corps]에 소집돼 부산 형무소에 수감된 국민보도연맹원 중 상당수가 오륙도 인근 해상에서 수장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결과]
오륙도 근처는 조류가 매우 강한 곳이다. 위치에 따라 거센 소용돌이도 일어 이곳에 빠지면 헤쳐 나오기가 불가능하다. 부산과 경상남도 지역 해안에서 수장된 시신들 중 일부가 일본 쓰시마 섬까지 떠내려갔다.
[의의와 평가]
오륙도 앞 해상은 바다에서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의 대표적인 현장이다.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 혈청소 앞 바다에서도 보도 연맹원 등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나 피해 규모는 오륙도 현장이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일이라 증거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