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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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蓮山洞古墳群出土朝鮮時代裝身具 |
영어의미역 | Joseon Dynasty Accessories Excavated from the Tomb Site No. 4 in Yeonsan-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산90-4|산123-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은영 |
[정의]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조선 전기 장신구.
[개설]
2008년 12월 28일부터 2010년 12월 2일까지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발굴한 연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조선 시대 장신구에는 반지·귀고리·구슬·석제 장신구가 있다. 반지는 조선 시대 부녀자들이 가장 많이 애용한 장신구인 만큼 9개 분묘에서 총 13점이 출토되었다. 13점 모두 서민층 부녀자들이 애용하였던 동(銅) 제품이고, 환(環)이 굵은 것과 가는 것이 있다. 3호분, 35호분, 43호분, 89호분에서는 2점이 쌍으로 출토되었다.
[형태]
귀고리는 3호분에서만 출토되었는데, 피장자의 머리 쪽에서 2점이 쌍으로 출토되었다. 청동제 가는 고리를 둥글게 구부려서 귀에 꿸 수 있도록 하였고, 그 아래에 수정제로 추정되는 구슬을 끼워 넣은 후 끝을 말아서 처리하였다. 길이는 5.2㎝ 정도이고, 고리 부분 직경이 2.8~3.3㎝이다. 조선 시대에는 숭유 정책으로 귀고리를 즐겨 달았다고는 볼 수 없다. 귀를 뚫어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에 양반 사회에서는 오랑캐의 풍습이라 하여 비판이 자주 일어났으며, 귀고리 착용 풍습에 대한 제재 법령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귀고리를 착용하였으며, 천민층에 속하는 기녀들이 즐겨 달았다는 견해가 있다.
구슬은 11호분에서 출토되었는데, 출토량과 위치가 다양하여 여러 용도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8호분, 13호분, 43호분, 53호분, 84호분에서는 피장자의 손 위치에서 단독으로 또는 반지와 같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장신구 중에 팔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팔찌로 착장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3호분, 35호분, 56호분의 경우에는 하반신 쪽 관 내부 또는 발치 쪽 관 바깥에 다른 부장품들과 같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착장품이라기보다 부장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25호분이나 86호분과 같이 머리 또는 가슴 쪽에서 1점이 출토된 예도 있다. 모두 유리제의 반투명한 갈색 구슬이며, 직경이 0.5~1㎝ 내외이다.
그 외에 3호분의 발치 쪽에서 발견된 석제 장신구 2점이 있다. 원형과 부정형의 석제에 상하를 관통하는 구멍이 뚫려 있고, 눈과 입을 형상화한 듯한 동심원이 새겨져 있다. 길이는 각각 1.6㎝, 2.7㎝이다.
[의의와 평가]
연산동 고분군의 발굴을 통해 조선 전기의 부산 지역 서민층이 어떤 장신구를 즐겨 사용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3호분의 경우는 귀고리, 반지, 구슬, 석제 장신구 등을 갖추고 있어 다른 무덤의 피장자와는 차별화된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연산동 고분군 출토 조선 시대 장신구는 현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