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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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良書販賣利用協同組合 |
영어의미역 | Busan Sea Products Merchchant Associa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1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성환 |
[정의]
1978년 부산에서 설립된 소비자 협동조합.
[설립 목적]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은 “좋은 책을 통해서 지적·문화적 수준을 높이고, 인재를 발굴하고 협동과 신뢰를 바탕으로 사귀면서 사회의 어둡고 병든 곳을 개혁하여 참다운 인간애가 넘치는 복지 부산을 건설하는데 기여하는 문화적 센터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1977년경 부산 중부교회의 김형기가 양서를 매개로 한 협동조합 운동을 제안하였고 기독교 청년, 대학생, 지식인 등이 호응하여 일 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78년 4월 2일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약칭 부산양협]이 설립되었다. YMCA 강당에서 79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창립총회에서 투표에 의해 김동수, 김형기, 윤정규, 이흥록 4인은 2년제 이사로, 신선명, 박현삼, 김명준, 정동진, 정영운 이상 5명은 1년제 이사로, 박노춘, 박상도, 임동규를 감사로 선출하였다. 이후 이사회를 열어 조합장에 이흥록을 추대하고, 전무에 김희욱을 임명하였다.
1979년 10월 16일 부마 항쟁이 발생하자 계엄 당국은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을 그 배후로 의심했는데,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피살되자 조합장에게 강한 압력을 가했다. 결국 11월 19일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은 해산되고 말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의 운영 원칙은 문호 개방의 원칙, 이용고 비례 배당의 원칙, 민주적 관리의 원칙, 경제적 민주주의의 원칙, 중립의 원칙, 교육의 원칙, 이자 제한의 원칙, 시가 판매의 원칙, 현금 거래의 원칙 등이었다. 그리고 1978년 4월 11일 보수동 책방 골목에 13.2㎡[4평]짜리 2층 가게를 전세로 얻어 4월 22일 협동서점을 개설하였다. 1층은 서점으로, 2층은 사무실 겸 모임 장소로 사용하였다. 가입을 원하는 시민들은 조합원 2명 이상의 추천과 가입금[당시 2,000원]과 출자금[매월 1구좌 1,000원 이상]을 내고 가입할 수 있었다.
조합원들은 조합원 교육을 받았고 조직 활성화를 위해 소모임을 조직하였다. 어학연구, 지역 사회 개발, 학술 연구, 종교 연구, 예술 연구 등의 모임이 있었다.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은 조합원 교육, 소모임과 함께 강연회를 통해 조합원들의 결속과 확대에 힘쓴 결과 큰 성과를 거두었다. 6월 23일에는 농촌 활동 기금 마련을 위해 에덴 공원에서 강변 축제를 열었다. 이때 송세경이 쓴 「농촌 문제와 농촌 활동」이라는 소책자를 배포하였고 7월 16일부터 25일 사이에 경상남도 울주군 두동면에서 부산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이 농촌 활동을 벌였다.
농촌 활동 후 경찰에서 「농촌 문제와 농촌 활동」이 긴급 조치 위반 혐의가 있다고 김희욱과 송세경을 연행해 조사하기도 하였다. 1979년 여름에는 송정 해수욕장에 탈의장을 운영하여, 재정을 충당하기도 하였다. 10월 9일에는 한글날을 맞아 금정산에서 조합원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1979년 9월 현재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의 조합원 수는 501명, 출자금은 500만 원을 넘었고 경영 수지는 흑자를 달성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은 소비자 협동조합 운동, 시민 문화 운동, 민주화 운동이라는 세 가지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의 양식과 성격은 마산, 서울, 대구, 울산, 수원 등지에서 설립된 양서협동조합의 모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