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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써리 어디 갔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146
영어의미역 Where Has Sseol-seori Gone?
이칭/별칭 「모심기 노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부산광역시
집필자 조수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요|노동요
기능구분 농업 노동요
형식구분 교환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8년 11월 20일 - 김사엽 저, 『조선 민요 집성』에 수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2년 12월 10일 - 김승찬·박경수·황경숙 공저, 『부산 민요 집성』에 재수록
채록지 동래 지방 - 부산광역시 일대
가창권역 부산광역시 일대 - 부산광역시 일대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 지방에서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

[개설]

「썰-써리 어디 갔노」는 모를 못자리에서 논으로 옮겨 심을 때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를 「모심기 노래」라고도 한다. 「썰-써리 어디 갔노」는 선후창의 형태로 불리는데 일꾼 중에서 먼저 한 사람이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후창을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48년 김사엽이 집필하고 정음사에서 간행한 『조선 민요 집성』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12월 10일 김승찬·박경수·황경숙 등이 집필하고 세종출판사에서 발행한 『부산 민요 집성』에도 현대 국어 표기로 재수록되어 있다. 채록 일시와 가창자는 분명하지 않다.

[구성 및 형식]

「썰-써리 어디 갔노」는 모심기를 하는 일꾼들이 두 패로 나뉘어 교환창으로 부른다. 사설은 모 찔 때 부르는 노래와 모 심을 때 부르는 노래, 점심 때 부르는 노래 등 논에서 일을 할 때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1. 모 찔 때

일월이 돋아와도/ 이슬갤줄 모르더라/ 맹홧대라 꺾어들고/ 이슬틀러 어서가자// 한강에 모를 부어/ 그모찌기 낭감하다/ 하늘에 목해갈아/ 그목해따기도 낭감하다.

2. 거의 다 쪄갈 때

밀치라 닫치라/ 모도잡아 훝치라.

3. 모 심을 때

이물끼저물끼 헐어놓고/ 주인네양반 어데갔노/ 문어야대전복 손에들고/ 첩의방에 놀러갔네// 저게가는 저구름은/ 어떤신선 타고가노/ 웅천이라 천자봉에/ 노던신선 타고가네// 이논빼미 모를숭거/ 금실금실 영화로다// [후략].

4. 점심 때

새별겉은 저밭골이/ 반달겉이 떠나오네/ 너가무슨 반달인고/ 초성달이 반달이지.

5. 점심이 더디 올 때

미나리라 숭굼체라/ 맛본다고 더디더라/ 설흔시캉 정지안에/ 도니라고 더디더라.

6. 점심 먹고 나서 오후

뱀이가 달겉으면/ 어느골시 어두우리/ 복성이 꽃마중열면/ 어느섬에 다담으리// 서울이라 낭기없어/ 쪽찔비녀 다리놓아/ 그다리를 건널나면/ 쿵쿵절사 소리나네// [후략].

7. 해가 다 져갈 때

매자구 잠잘땐가/ 난들산이 오를댄가/ 썰써리 어데갔노/ 썰써리 산에갔네/ 있으시면 볼랐더니/ 오거들랑 보고가소.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모심기는 모내기 또는 이앙법이라고도 하며, 못자리에서 기른 모를 논에 옮겨 심는 일을 말한다. 씨를 뿌리는 자리가 작고, 잡초를 손질하기에 쉬워서 관리하는 데는 편하지만 가뭄에 민감하고 노동력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모심기를 하기 전에 모판에서 모를 찌는 과정이 있는데, 이때는 「모찌기 소리」를 부른다.

모심기를 할 때는 ‘줄잡이’라 부르는 사람이 논을 가로질러 못줄을 하나나 두 개 치고 양쪽에서 줄을 잡으면 그 줄을 따라 사람들이 늘어서서 못줄에 맞춰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었다. 이때 늘어선 사람들이 일정한 속도에 맞춰서 동시에 모를 심어야 줄이 어그러지지 않고 효율적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심기를 할 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동작을 통일할 수 있도록 「썰-써리 어디 갔노」를 불렀다.

[현황]

농업의 기계화로 인해 모심기 역시 이앙기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오늘날의 농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모심기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따라서 모심기를 하면서 부르던 「썰-써리 어디 갔노」의 전승도 거의 끊어졌다.

[의의와 평가]

모심기는 오랫동안 길게 이어지는 작업이어서 사설이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썰-써리 어디 갔노」에는 모심기를 하는 동안 상황에 맞추어 사설을 짜고 노래를 부르면서 흥을 돋우었던 당시 부산 지역 농민들의 정서가 담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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