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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신문기자회 경남지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122
한자 全國新聞記者會慶南支部
영어의미역 Gyeongsangnam-do Branch of the National Newspapermans Association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철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언론 단체
설립자 박일형
설립 시기/일시 1945년 12월 1일연표보기 - 창립
최초 설립지 전국신문기자회 경남지부 - 부산광역시

[정의]

1945년 12월 부산에서 결성된 전국신문기자회의 경남 지부.

[설립 목적]

전국신문기자회 경남지부 결성식의 취지는 “건국도상에 있어서 단결의 힘으로 우리의 해방을 위하여 역사적 정의를 발휘하자”는 것이었다. 즉, 중앙 조직인 전국신문기자회의 경남 지부로서 일제 잔재의 청산과 새로운 국가 건설을 도모하고,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확보하고자 설립된 단체이다.

[변천]

1945년 11월 하순부터 지부 결성을 준비하여 오다가, 12월 1일 남선여고 강당에서 창립 대회를 개최하였다. 12월 5일 위원 21명을 선출하였으며, 12월 8일에는 그 부서와 간부를 결정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전국신문기자회 경남지부 결성식에는 각 정당 대표 등 각계 대표자와 도내 전 신문 기자 약 100여 명이 참석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하였으므로 이를 통해 그 성격과 활동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그 주요 내용은 즉,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 건설에의 장애물을 정확히 비판하여 대중에게 그 정체를 밝히며, 참된 민족 해방을 위한 역사적 정의를 발휘하는 강력한 필봉을 가지기를 기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확보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으로, “엄정 중립이라는 기회주의적 이념”이 “전민족적 격동기에는 존재할 수 없음”을 확신하면서 “용감히 투쟁적 언론진을 구축하기 위해 분투함을 선언”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뚜렷한 정치의식과 실천성을 가지고 활동에 임하였던 전국신문기자회 경남지부는 1945년 12월 초 신구(新舊) 민족 반역자에 대한 강력한 규정을 마련하는 등 필봉을 전투적으로 무장하고 친일파·민족 반역자를 처단하여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는데 일조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이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1945년 12월 6일 두 차례에 걸쳐 인민해방보사에 불을 질렀으나, 전국신문기자회 경남지부에서는 방화 세력들에 대한 규탄과 『인민해방보』의 속간, 이를 위한 적극 원조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그 활동을 계속하였다.

[현황]

1945년 12월 5일 전국신문기자회 경남지부 위원으로 선출된 21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즉, 민주중보사의 이갑기(李甲基)·석광수(石光守)·최광림(崔光林)·박영준(朴永俊)·박상진(朴相鎭)·조병종(曺秉宗), 인민해방보사의 박승도(朴勝道)·권오상(權伍尙)·정덕실(鄭德實), 대중신문사의 박일형(朴日馨)·홍보용(洪甫容)·전두만(田斗萬)·김경출(金庚出), 부산매일신보사의 이택국(李宅國)·함영진(咸榮鎭), 국제통신사의 김명찬(金明贊)·홍병희(洪秉熹), 조선인민보사의 강명진(姜明鎭)·이덕준(李德準)·이영석(李永錫), 부산정보사의 김연수(金演洙) 등이었다. 또 12월 8일에는 부서 및 간부를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는데, 위원장에는 박일형, 서기국 석광수·김명찬, 조사부 전두만·김연수, 연락부 박승도·권오상, 사업부 강명호·이택국 등이다.

[의의와 평가]

미군정기에는 종이를 군정 당국에서 배급하였기 때문에 신문의 존폐 문제는 군정 당국에서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여러 신문사에서는 군정을 비판하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옳다고 판단되면 기사화했기 때문에 압수·수색 나아가 정간 당하게 된다.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신문사는 대중매체로서 정론을 펴고자 노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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