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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학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034
한자 醒民學會
영어의미역 The Seongmin Academy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청년 단체
설립자 박기출
설립 시기/일시 1959년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성민학회 - 부산광역시 동구

[정의]

1959년 부산에서 설립된 진보적 청년들의 비밀결사.

[설립 목적]

성민학회는 진보적 정치 운동을 지향하는 청년들의 결사체로서, 이승만(李承晩) 정권 하의 억압적인 정치 환경을 고려하여 비밀결사로 조직되었다.

[변천]

1958년 진보당 사건으로 진보당이 불법화된 뒤 진보당과 관련을 가진 일부 청년들은 1959년 진보당 부위원장을 지낸 박기출을 중심으로 부산시 동구에서 성민학회를 결성했다. 뒤에 서울에도 지부와 유사한 조직을 마련했다. 중심인물은 김배영, 김한덕, 김영옥 등이었다. 성민학회의 회원 가운데 일부는 4·19 혁명 이후 신진회, 통일청년회 등과 함께 통일민주청년동맹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와 지방협의회에서 주요 간부로 활동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4·19 혁명 이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와 지방협의회를 결성하고, 서울대학교 등에 민족통일연맹의 결성을 지원하여 통일 운동을 전개했다. 성민학회의 회원으로 통일민주청년동맹에 참여하고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와 지방협의회에서 활동한 인물 대부분이 5·16 쿠데타 이후 체포, 구금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의와 평가]

성민학회이승만 정권의 폭압 아래서 부산 지역의 진보적 청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여, 4·19 혁명 이후 민주화 운동과 자주화 투쟁을 전개하는 데 조직적 기반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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