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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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己出 |
영어음역 | Bak Gichul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41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하유식 |
[정의]
부산 출신의 의사이자 언론인, 정치가.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1909년 4월 28일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박주성과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서복동(徐福童)과 결혼하여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박기출(朴己出)은 1924년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히로시마고등공업학교[廣島高等工業學校]를 마쳤다. 그 뒤 아버지의 직업인 의업(醫業)을 계승하기 위해 동경의학전문학교(東京醫學專門學校)에서 공부하고 1935년에 졸업하였다. 귀국 후 부산부립병원에서 근무하였다. 1942년 규슈제국대학[九州帝國大學]에서 부산 출신으로는 세 번째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3년 박기출은 동구 초량동에서 광본외과(光本外科)를 개업하여 운영하다가 해방 후 밝외과로 병원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외과 의사로서 권위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의사회 회장과 대한의사협의회 회장직을 역임하였다. 해방 직후 박기출은 건국준비위원회 경남연합 후생부장을 맡아 구호 활동에 협조하였다. 또한 1946년에는 이극로(李克魯)가 창설한 건민회(健民會)에 입회하여 경남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정치 무대에 들어섰다. 미군정에도 협조하여 1946년 경상남도 미군정청 초대 후생부장을 역임하였다. 1947년에는 경남의사회 회장, 민족자주연맹과 민주독립당 경남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민주 중보』의 사장에 발탁되어 언론인으로도 활동하였다.
1955년 12월 22일 진보당 창당추진위원회가 결성되자 조봉암(曺奉岩), 서상일(徐相日), 김성숙(金星淑), 이동화(李東華) 등과 함께 12명의 창당추진위원회에 선출되었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을 받고 ‘평화적인 남북통일’, ‘피압박 대중의 승리’ 등을 구호로 내세우며 혁신과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제창하였다. 하지만 야당의 연합 전선 형성을 위해 사퇴하였다.
1958년 이승만(李承晩) 정권이 조작한 진보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징역 20년을 구형받았으나 무죄를 선고받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조봉암이 사형당한 후 낙향하여 부산에 머물렀다. 그 후 1960년 2월 2일 서울에서 서상일, 장택상(張澤相), 이훈구, 김성숙(金星淑), 정화암 등과 함께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을 결성하였다. 4·19 혁명 뒤 들어선 허정(許政) 과도 정부 때는 사회대중당을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5대 국회 민의원 선거에 부산시 부산진 갑구에 입후보했으나 차점으로 낙선하였다. 이때 반혁명 세력이 다시 대두하는 것을 규탄하다가 ‘입후보자 난동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형을 선고받았다.
5·16 군사 쿠데타 뒤인 1967년 제7대 국회 의원 총선거에서 신민당 공천으로 부산시 동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1973년 2월에 실시된 제9대 총선에서 서울 동대문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를 은퇴하였다. 1974년 유신 체제를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규슈 지방의 무의촌 병원과 보건소에서 의사로 일하다 1977년 8월 5일 사망하였다.
박기출은 정치가로서뿐만 아니라 체육·문화 사업가로서의 활동 폭도 매우 넓었다. 해방 후 경상남도 체육회를 창립하고 10년간 회장직을 맡았으며, 농촌 문화 육성과 농민의 구조를 위하여 한국농촌위생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장직을 맡았다. 또한 그는 우장춘(禹長春) 박사의 사업을 측면에서 돕기도 했고,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새한학회를 창설하여 무료 강좌와 좌담회 개최 등의 봉사 활동을 하였으며,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구봉산 자락에 새한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해방 후의 한국 정치사를 담은 『한국 정치사』[일본, 1974]가 있다. 정치적 견해를 밝힌 논문과 강연 요지를 모아서 엮은 『내일을 찾는 마음』[1968]도 대표적인 저술이다. 그 외 『인간을 위한 종교』[1975], 『인간과 삶과 종교』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