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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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Seong Gideuk |
분야 | 문화·교육/교육,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백양대로136번길 75[당감동 611-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성환 |
[정의]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교육 운동가.
[활동 사항]
성기득은 1962년 11월 14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1974년 2월 좌천초등학교, 1977년 2월 동아중학교, 1980년 2월 배정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을 지원하였다. 1980년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에 합격하였으나 합격증을 교부받지 못해 같은 해 인제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인제대학교에 재학하던 중 병영 집체 훈련 거부 투쟁으로 1981년 제적되었고, 입영 영장이 나와 입대하여 복무하였다. 군대를 제대한 후 교사의 꿈을 안고 1986년 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였다.
순천대학교 재학 시절 성기득은 전두환(全斗煥) 군사 독재에 저항하는 학생 운동에 참여하였다. 1986년 학원 민주화 투쟁, 1987년 6월 민주 항쟁, 1988년 108일간의 농성을 동반한 어용 무능 교수 퇴진 투쟁에 나섰다. 또 1989년에는 순천대학교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 결성 운동,이철규 학생 고문 살인 진상 규명 투쟁’에 앞장서고 전남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남대협] 통일 선봉대장으로 통일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89년 8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의 위반으로 구속되어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었다가 1991년 2월 출옥하였다. 출옥 후 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에 복학하여 1992년 졸업하였다. 그러나 그가 공주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1990년 국립 대학 졸업자 교원 의무 발령이 폐지되었다. 더욱이 ‘성행 불량자 규정’ 등의 악법에 걸려 교직 임용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성기득은 학원 강사로 생활하였는데, 1999년 9월 「시국 사건 관련 교원 임용 제외자 채용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을 계기로, 2000년 전국시국사건관련미임용자원상회복추진위원회[전미추]가 결성되었다.
성기득은 여기에 참여하여 부당하게 임용에서 제외된 사람들의 임용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고, 마침내 2000년 10월 특별법이 개정됨으로써 2001년 9월 1일 마흔이 가까운 나이로 부산 개금여자중학교의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교육 활동에 열정적으로 몰입하였다. 그러다가 병을 얻어 7개월 간 휴직한 후 2003년 10월 다시 교단에 복귀하였다.
그해 11월 3학년 학생의 성적 처리를 둘러싸고 교감, 학년 부장과 심각한 갈등을 빚게 되었는데,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관리자의 처사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마침내 관리자들과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상황에서 성기득은 심장 박동 정지, 저산소성 뇌 손상, 뇌 탈출증 등의 증상을 일으키며 12월 7일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 산173 솥발산 공원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2004년 성기득을 추모하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에서 『고 성기득 선생님 추모집-내가 물이라면』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