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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아 섬아 가덕섬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031
한자 -加德-
영어의미역 Island, Island, Gadeok Island
이칭/별칭 「가덕섬 노래」,「가덕 팔경가」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
집필자 박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요|노동요|유희요
기능구분 농업 노동요|유희요
형식구분 교환창|독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4년 12월 28일 - 임동권 편찬, 『한국 민요집』2에 수록
채록지 가덕도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지도보기
가창권역 가덕도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가덕도] 일대에서 모심기를 할 때나 즐겁게 놀 때 부르는 노동요이자 유희요.

[개설]

「섬아 섬아 가덕섬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앞부분은 모심기를 할 때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며, 뒷부분은 가덕섬의 팔경으로 꼽히는 곳을 열거하며 부르는 가창 민요이다. 본래는 전자의 ‘모심기 노래’와 후자의 일명 「가덕섬 노래」 또는 「가덕 팔경가」로 불리는 노래는 서로 별개로 존재했다. 그러나 점차 전승 과정에서 두 민요가 연결되어 함께 불리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채록/수집 상황]

1974년 임동권이 편찬하고 집문당에서 간행한 『한국 민요집』2의 17~18쪽에 수록되어 있다. 끝에 ‘가덕도 지방’에서 채록한 것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그 밖의 구체적인 채록 정보는 알 수 없다.

[구성 및 형식]

「섬아 섬아 가덕섬아」의 앞부분 노래는 ‘모심기 노래’로 부르기 때문에 본래 교환창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채록된 자료는 4줄씩 구성되어 있는데, 첫 두 줄을 모심기를 하는 한쪽에서 부르면 나머지 두 줄을 다른 쪽에서 부른다. 그렇지만 채록된 자료로서는 교환창의 여부를 알 수 없다. 「섬아 섬아 가덕섬아」의 뒷부분 노래는 가덕도 팔경이라 일컫는 곳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각각 4줄씩 4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뒷부분은 현재 주로 독창으로 불리고 있다.

[내용]

1. 「섬아 섬아 가덕섬아」의 앞부분

섬아섬아 가덕섬아 폿닙같이 좁은섬아/ 나락껍질 배를타고 임계신데 찾아갈까// 섬아섬아 가덕섬아 쇠통같이 잠긴섬아/ 칠월칠석 기다려서 오작교로 건너갈까// 서울이라 죽설밭에 금비둘기 알을낳고/ 그알한쌍 주웠더면 금년과거 내할것을[이하 생략].

가덕섬은 좁고 물에 갇혀 있다고 하면서, 배를 타고 임을 찾아가거나 칠월칠석 오작교가 놓아지면 육지로 건너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육지와 떨어져 사는 가덕도 주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 「섬아 섬아 가덕섬아」의 뒷부분

가덕도 연대봉은 섬안의 조종산이요/ 천성앞 천수대는 도중의 명승지요// 삼신도 늘어져서 거제를 연하고라/ 갈미섬 해일에는 생복의 생산지라// 세바지 겨울되면 해마다 풍년이요/ 동두멀 등대불은 뱃길을 가리키네// 대두리 합포장은 남한에 유명하고/ 눌차(訥次)의 석화맛은 세계의 명미로다// 사또님도 안무섭고 나라님도 안무섭다/ 세상에 무서운것 바람밖에 더있는가.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인 연대봉은 조종산이며, 천수대는 명승지, 삼신도는 거제도와 마주한 섬, 갈미섬은 생복의 생산지, 동두말은 등대, 합포장은 유명한 장, 눌차의 석화맛을 차례로 연결하여 이른바 ‘가덕 팔경’을 노래하고 있다. 가덕도를 자랑삼아 하는 노래 끝에 “사또님도 안무섭고”의 이하 부분은 모심기 노래로 부르는 다른 각 편의 사설이 붙은 것이다. 가덕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람이라고 하면서 섬 생활의 어려움을 붙여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모심기는 못자리에서 기른 모를 논에 옮겨 심는 일을 말하는데, 모내기라고도 한다. 모심기를 할 때는 먼저 논을 가로질러 못줄을 하나나 두 개 치고 양쪽에서 ‘줄잡이’라 부르는 사람이 줄을 잡는다. 그 뒤 많은 사람들이 줄을 따라 늘어선 다음에 못줄에 맞춰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어 나간다. 일단 모심기를 시작하면 늘어선 사람들은 일정한 속도에 맞춰서 동시에 모를 심어야 하고, 한 사람이라도 속도에 맞추지 못하면 줄 전체가 어그러진다. 따라서 모심기를 할 때에 선후창이나 교환창으로 노래를 불러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에 손을 맞추었다.

[현황]

「섬아 섬아 가덕섬아」의 앞부분 사설은 과거 모심기 노래로 불리다가 근래에는 거의 부르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뒷부분의 노래는 가덕도에 등대가 생긴 이후에 형성된 근대 민요인데, 누군가 창작했던 노래가 점차 입으로 전승되어 민요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뒷부분만이 「가덕 팔경가」라는 제목으로 유흥의 공간에서 불리고 있다. 아마도 처음에는 모심기 노래로 불리다가 점차 독립된 가창 민요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섬아 섬아 가덕섬아」가덕도에서만 전승되는 민요로 지역색이 강하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그리고 처음 모심기 노래로 불리던 것이 점차 독립된 유흥요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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