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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일보』 파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882
한자 釜山日報罷業
영어의미역 Strike at The Busan Ilbo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승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주화 운동
관련인물/단체 부산일보 노동조합|윤임술
발생|시작 시기/일시 1988년 6월 30일연표보기 - 부산일보 노동조합 쟁의 발생 신고
종결 시기/일시 1988년 7월 16일연표보기 - 협상 타결
발단 시기/일시 1988년 1월 22일연표보기 - 부산일보 노동조합 결성
전개 시기/일시 1988년 7월 11일 - 전면 파업 돌입
발생|시작 장소 부산일보사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지도보기
종결 장소 부산일보사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지도보기

[정의]

1988년 편집권 독립을 위한 부산일보 노동조합의 파업 사건.

[역사적 배경]

1987년 2월 11일 부산일보사 기자들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부산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부산 일보』의 왜곡 편파 보도에 항의 성명을 내고, 당시 윤임술 사장과 김기철 상무가 장악하고 있던 편집국 제작 회의를 편집국장의 책임 하에 두는 체제로 환원시켰다.

6월 5일에는 4·13 호헌 조치의 철폐와 편집권의 진정한 독립을 요구하는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발표하였고, 8월 12일 관제 언론의 앞잡이인 윤임술 사장과 김기철 상무의 퇴진 그리고 편집국 간부들의 양심선언을 요구하며 실력 행사 직전까지 돌입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기자들은 기자협의회 차원의 투쟁과 방식에 한계를 인식하고, 1987년 12월 18일 『부산 일보』 기자 47명으로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하였으며, 1988년 1월 22일에 드디어 부산일보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경과]

1988년 6월 30일 부산일보 노동조합은 공정 보도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편집권 독립을 위한 ‘편집국장 추천제’를 요구하며 쟁의 발생 신고를 하였다. 7월 11일에는 3개 항의 단체 협상을 결의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하여, 신문 발행이 중단되었다. 『부산 일보』의 파업은 ‘전국언론노조협의회’의 지지를 받았으며, 전국 언론사의 연대 투쟁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였다. 한편으로 부산 지역의 시민들은 파업이 계속되는 동안 격려 전화와 지지 방문 및 성금 등으로 지원하였고, 부산 지역의 30여 개 사회단체도 ‘부일노조 지지 및 민주언론추진시민협의회’를 결성하고 16일 서명 운동과 함께 시민대회를 개최하였다.

[결과]

파업에 돌입한 지 1주일 만인 16일에 부산일보사 재단은 윤임술 사장의 퇴진, 편집국장 추천제 등 부산일보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락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부산 일보』에 ‘어용지’의 족쇄를 채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정수재단 문제를 제외한 채로 협상은 타결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산일보 노동조합의 전면 파업은 한국 언론사상 최초의 6일간의 제작 거부였다. 『부산 일보』 파업은 ‘편집국장 3배수 추천제’를 관철시킴으로써 편집권 독립과 민주 언론 운동을 위한 첫걸음이자 중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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