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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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府聯合靑年團 |
영어의미역 | Busan-bu Young Men´s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가연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일본인 청년 단체의 연합 조직.
[설립 목적]
부산부 연합청년단은 각 정촌(町村) 별로 흩어져있던 일본인 청년 단체를 한데 규합하여 진보 발달을 조장하고 교육 칙어의 정신을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8년 6월 18일 부산공회당 소집회당에서 부산부 청년단 연합 위원회를 개최하여 연합 규약을 마련하고 부산부 연합청년단을 설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 지역의 일본인 청년단 운동을 진흥시키기 위해 기존에 설립되어 있던 청년단을 규합하는 방식으로 설립하였다. 사업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첫째, 연합 조직을 통해 각 청년단의 사업을 보조하고, 청년단 미설립 지역에서는 청년단 설립을 보조하였다. 그리고 각종의 강습회, 강연회, 체육회 및 견학 여행을 하였으며, 도시 청년의 지도 교양에 관한 연구 조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가맹 청년단으로서 성적이 우량한 자 및 청년단에 관해 특별한 공적이 있는 자, 독행(篤行)이 있는 자를 표창하였다. 가맹 청년단의 간부 협의회 및 연합 대회를 개최하였고, 가맹 각 청년단의 연합 사업을 주최하기도 하였다.
1928년 5월 9일~5월 18일 연합 청년단 설립의 사전 작업으로 각 청년단 대표들의 일본 청년단 시찰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시찰 인원은 인솔자 포함 14명이었고 부산부가 1인당 40엔의 여비를 지급하였다. 1928년 창립 당시의 대표 인물로는 상원일랑(桑原一郞)[회장, 부산부윤], 산내충시(山內忠市)[부산부 이사관], 천야행태랑(淺野幸太郞)[실업청년회장, 부회장], 포전(浦田)[상임 간사]이 있었다. 1929년 12월에는 상원일랑 부산부윤의 전출에 따라 판전문길(坂田文吉)이 회장직을 승계하였다.
부산부 연합청년단은 회장 1명과 부회장 2명 그리고 평의원 약간 명을 둘 수 있었다. 회장과 부회장은 평의원회에서 추대했으며, 평의원은 가맹 청년 단장 및 각 단에서 2명씩 선출하였다. 단, 임기는 2년으로 하고 재선이 불가하였다. 간사는 부산부 학무계원이 맡았으며, 사회교화계(社會敎化係) 주임을 상무 이사로 하였다. 고문은 회장이 추천하고 평의원회에서 동의를 얻어 촉탁하였다. 또한 평의원회는 매년 1회 개회하여 예산 및 결산에 관한 사항, 연합 사업 계획에 관한 사항, 회칙의 개폐 ·제정에 관한 사항 등을 논의하였다.
부산부 연합청년단에 가맹하려는 단체는 30명 이상의 단원을 가지고 있어야 했으며, 청년단의 목적에 맞는 단체여야 했다. 신청 후 평의원회의 동의를 거쳐 회장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허가를 받은 단체는 따로 정한 양식의 입회 원서와 함께 가맹금 1엔을 지불해야 했다.
[의의와 평가]
부산부 연합청년단은 부산부에서 주도하여 부산 지역 일본인 청년 단체의 연합 조직으로 결성한 것으로, 물질주의로 흐르는 현대 사회 속에서 식민지인 조선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들의 정신적 타락을 경계하고, 무엇보다 일본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육의 일환이었다. 이는 지역에서 식민주의를 실천할 미래의 식민자들을 자체적으로 길러내는 시스템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