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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785
한자 釜山福泉洞古墳群出土-
영어의미역 Iron Spear Excavated from the Tombs in Bokcheon-dong in Busan
이칭/별칭 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쇠 투겁창,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창,복천동 고분군 출토 쇠창,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철모 일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6[복천동 50]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현주 2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기|쇠 창
재질
크기 25㎝~50㎝[길이]
출토|발굴 시기/일시 1980년~2008년연표보기 -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 대한 제1차~제8차 발굴 조사 시 발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1년 6월 9일연표보기 - 부산 복천동 고분군 사적 제273호로 지정
현 소장처 부산대학교 박물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산30지도보기
현 소장처 복천박물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지도보기
현 소장처 동아대학교 박물관 -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1지도보기
원소재지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232
출토|발견지 부산 복천동 고분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의 쇠 창.

[개설]

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쇠창[釜山福泉洞古墳群出土鐵矛]은 1980~2008년에 실시된 부산 복천동 고분군[사적 제273호]에 대한 제1~8차 발굴 조사 때 출토되었다. 4~6세에 제작된 쇠창[鐵矛]으로 현재 부산대학교 박물관복천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쇠창은 전체 길이와 몸체의 단면 형태에 따라 구분된다. 단면 형태는 판상[널빤지 모양], 볼록 렌즈 형, 마름모형, 삼각형, 방형[사각형] 등이 있다. 판상은 실용적인 무기라기보다는 무기형 의기로 따로 구분하며, 4~5세기 대에 분포한다. 볼록 렌즈 형은 원삼국 시대에 다수를 차지하나, 4세기 이후가 되면 신라·가야 지역의 것이 전체적으로 마름모형으로 변화한다. 쇠창의 길이에 따라 길이가 20㎝ 이내로 몸체와 투겁의 비율이 1:1인 것은 단봉식(短鋒式), 길이가 30㎝ 내외로 몸체와 투겁의 비율이 3:2인 것은 중봉식(中鋒式), 길이가 40㎝ 이상인 것은 장봉식(長鋒式)으로 구분한다. 투겁은 나무 자루를 끼우기 위한 기능을 가진 물건인데, 자루를 보다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해서 구멍을 뚫어 자루와 투겁을 관통하는 못을 꽂기도 한다.

[형태]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쇠창은 대부분이 단면 마름모형의 중봉식이다. 4세기 초 부산 복천동 고분군 80·81호에서는 원삼국 시대 후기의 전통이 남아 있어 단면 마름모형의 장봉식 쇠창이 출토되기도 하나, 4세기 전엽으로 비정되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38호를 기점으로 마름모형의 중봉식으로 전환되어 6세기 이후까지 지속된다.

무기라는 쇠창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가장 효율적으로 극대화된 형태를 완성하고 나면 형태상의 변화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5세기 전엽이 되면 부산 복천동 고분군을 비롯한 한반도 남부 사회를 변동시키는 요소들이 작용되면서 무기 생산 시스템도 발전을 이루게 되어, 대량 생산을 위해 쇠창의 형태도 획일화되는 경향을 띠게 된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5세기 중엽 이후가 되면 창끝에 해당하는 쇠창의 형태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나무 자루까지 복원하였을 경우 3m 이상의 긴 창인 삭(矟)의 존재를 가늠할 수 있어 마상 전투에서 적극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

부산 복천동 고분군의 전체적인 부장 양상은 여타 신라·가야 고분군과 비교하더라도 무기의 부장이 탁월하게 많은 편이다. 그중 전쟁에서 가장 담력이 요구되는 무기인 쇠창의 부장은 주인공의 전사적 성격을 적극 반영하는 기물 중의 하나이다. 특히 부산 복천동 고분군 10·11호, 21·22호, 38호, 60호, 71호 등에서는 10여 점 내외 혹은 그 이상의 쇠창이 다량 출토되어 무기의 소유에 따른 군사적인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4세기 대부터 6세기 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종 쇠창이 출토되어 쇠창의 형태적 변화 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다. 특히 5세기 전엽 이후에는 형태적 획일화로 무기 생산 시스템의 발전을 알 수 있고, 또 5세기 중엽 이후에는 전술의 발전으로 마상 전투에서 탁월한 효력을 발휘할 장병으로서의 쇠창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 쇠창은 이러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기 연구에 있어서 주목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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