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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656
한자 盤龍里古墳群
영어의미역 Ancient Tombs of Banryong-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홍보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12월 4일~2009년 2월 26일연표보기 - (주)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출토 유물 소장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로 210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에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

[위치]

반룡리 고분군장안사에서 시작하여 월내의 동해안으로 이르는 장안천의 동북쪽 54m의 구릉 정상부와 남쪽 사면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반룡리 고분군은 기장 국도 제14호선의 확장 공사에 앞서 2008년 12월 4일부터 2009년 2월 26일까지 (주)경남문화재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면적은 2,730㎡이며, 구릉 정상과 남쪽 사면에서 삼국 시대의 무덤 22기와 수혈 2기가 확인되었다.

[형태]

삼국 시대의 무덤은 덧널무덤 1기와 구덩식 돌덧널무덤 21기이다. 해발이 높은 북쪽에 눈썹 모양의 도랑이 있고, 도랑 아래에 긴 네모꼴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돌로 덧널을 만들었다. 도랑은 빗물이 무덤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게 옆으로 배수가 되게 하였다. 일부 무덤은 덧널이 1기이지만, 대부분은 도랑 아래쪽에 덧널 2기 또는 3기가 가까이 붙어서 나란하게 배치되었다. 부부 또는 형제, 자매, 부모, 자식 등 친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덧널무덤의 평면 형태는 긴 네모꼴이고,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배치되었다. 석곽은 막돌과 냇돌을 섞어 만들었고, 덧널 안의 바닥에는 크기가 작은 깬돌 또는 냇돌을 중앙부 또는 한쪽에 치우쳐 깔아 주검 받침대로 만들었다. 널을 만들 때 사용한 꺾쇠가 나오지 않아 목곽을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석곽의 규모가 길이 350㎝, 길이 200㎝ 이하의 소형이기 때문에 널을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출토 유물]

유물은 석곽의 양쪽 가장자리에 모여 있는데, 서쪽 가장자리에 항아리 등의 큰 토기가 모여 있고, 동쪽에는 뚜껑·굽다리 접시 등 크기가 작은 토기가 모여 있다. 신라와 가야의 석곽에 유물이 부장될 경우, 무덤에 묻힌 피장자의 머리맡에는 크기가 작은 토기를 놓고, 발치 쪽에는 큰 토기를 놓는 점을 참고할 때, 석곽에 묻힌 피장자의 머리는 동쪽에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굽다리 접시·컵형 토기·항아리·발형 항아리 받침대 등의 토기류와 화살촉·낫·칼·주조 괭이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현황]

반룡리 고분군은 도로가 개설된 부분은 사라졌고, 이외의 부분은 야산으로 숲이 우거져 있다.

[의의와 평가]

반룡리 고분군은 삼국 시대인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서민의 무덤군으로서 삼국 시대 장안천 일대의 문화를 구명할 수 있는 유적이다. 특히 돌덧널무덤 뒤쪽에 도랑을 설치한 점은 울산 지역의 삼국 시대 무덤과 유사한 양상으로, 울산 지역과의 관계를 구명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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