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5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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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村里遺蹟出土木製- |
영어의미역 | Wooden Small Plow Excavated from the Gochon-ri Remains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홍보식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에서 출토된 신라 시대에 나무로 만든 따비.
[개설]
따비는 풀뿌리를 뽑거나 밭을 가는 데에 쓰는 농기구의 한 종류로서 형태에 따라 말굽쇠형 따비, 주걱형 따비, 코끼리 이빨형 따비 등이 있다고 한다.
삼한 시대 후기부터 삼국 시대 전반의 무덤에서 편평하고 긴 날 끝에 ㄱ자 모양으로 꺾여 자루를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는 따비형 철기가 출토되었다. 이 따비형 철기를 땅을 일구어 씨앗을 심기 위한 농기구의 일종으로 보아 왔으나, 그 형태를 기경구(起耕具)[논밭을 갈 때 쓰는 도구]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최근에 나왔다. 무덤의 부장품으로 출토되는 쇠로 만든 따비형 철기는 무덤에서 U자형 삽날과 쇠스랑과 함께 출토되어 농기구의 하나임에 분명한데, 논밭갈이와 흙덩이를 부수고 골을 타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저습지 유적이 조사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목기가 출토되었으며, 나무로 만든 따비도 확인되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유적에서 목제 따비가 출토되었다. 목제 따비는 가공한 나무판의 가운데를 파내어 양쪽에 날을 만든 쌍날따비이다.
나무로 만든 따비는 쇠로 만든 따비와 비교하면 날의 길이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고, 날이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어 사용 방식이 쇠 따비와 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쇠 따비가 기경·파쇄·고랑 만들기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지만, 나무로 만든 따비는 날이 상당히 길어 흙덩이를 부수기에는 불편하였고, 흙을 일구거나 씨앗을 파종하기 위한 골을 타는 농구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광역시 서구 괴정동에서 출토한 기원전 2, 3세기의 농경문 청동기(農耕文靑銅器)의 그림에서 두 날 따비로 밭의 골을 파는 장면이 있다. 이 농경문 청동기에 나오는 두 날 따비는 나무로 만든 따비로 추정된다.
[형태]
고촌리 유적 출토 목제 따비는 참나무를 자귀[나무를 깎아 다듬는 연장] 같은 도구로 가공하여 만들었다. 병부(柄部)[물건에서 자루가 되는 부분]의 단면은 V자형으로 만들었고, 술부는 병부에서 V자형으로 갈라진다. 따비의 전체 길이는 88.8㎝·114.8㎝로 상당히 길고, 너비는 13.6㎝·12.4㎝로 넓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산비탈을 개간해서 만든 밭이나 몇 해 동안 농사를 쉰 묵은 밭의 경우 자갈 등이 많아 바로 씨를 뿌려 경작을 하기가 어렵다. 이 경우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밭을 고르는 작업이 필요하다. 따비는 이때 밭에 있는 풀뿌리와 자갈 등을 제거하고 땅의 결을 고르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