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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와 히로키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258
한자 今川廣吉
영어음역 Yimigawa Hirokichi
이칭/별칭 금천광길(今川廣吉)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가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료|언론인
성별
대표경력 『조선 시보』 대표
활동 시기/일시 1910년 - 조선총독부 평양감옥 간수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11년 - 조선총독부 광주감옥 전주분감 간수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14년 - 조선총독부 서대문감옥 간수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15년 - 조선총독부 평양감옥 신의주분감 간수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17년 - 조선총독부 부산감옥 간수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조선시보합자회사 유한사원, 1925년부터 조선시보 대표에 임명
출생지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縣]
활동지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발간된 『조선 시보』의 대표를 역임한 언론인이자 관료.

[활동 사항]

이마가와 히로키치[今川廣吉]는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縣]에서 태어났다. 1910년 조선총독부 평양감옥의 간수장을 시작으로, 1911~1913년에는 조선총독부 광주감옥 전주분감 간수장, 1914년에는 조선총독부 서대문감옥 간수장, 1915~1916년에는 조선총독부 평양감옥 신의주분감 간수장, 1917년~1918년에는 조선총독부 부산감옥의 간수장을 역임하였다. 이렇듯 처음에는 신문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조선총독부 관료로서 조선에 진출하였으나, 이후 1921년에 합자 회사인 조선시보사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신문사 경영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이마가와 히로키치는 1925년 조선시보사의 최대 주주가 되어 이후 1937년까지 신문사의 대표로서 활동하였다. 『조선 시보』는 창립 이후 사장이 몇 번이나 교체되었으나, 사실상 이마가와 히로키치가 신문사의 대표를 맡으면서 부산의 영향력 있는 일본어 신문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마가와 히로키치 이후 『조선 시보』 사장은 이마가와 모모에[今川百枝]였는데, 그는 이마가와 히로키치의 양자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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