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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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際新報主筆-常任論說委員事件 |
영어의미역 | Scandal of Chief Editor and Standing Editorial Writer of The Gukje Sinbo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언론·출판,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세 |
[정의]
4·19 혁명 시기 부산 지역의 진보적 언론 활동에 대한 군사 법정의 재판.
[역사적 배경]
4·19 혁명은 억압적인 정치 환경에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하여 진보적 언론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에 부산을 대표하는 야당지인 『국제 신보』의 주필 이병주(李炳注)와 변노섭(卞魯燮)은 진보적 논조의 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4·19 혁명 시기 최대의 관심사였던 통일 문제에서 이들은 부산 지역의 진보적 지식인이 가졌던 정치적 인식을 대변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경과]
이병주는 국제신보사에서 1958년 10월 논설위원, 1959년 7월 주필을 거쳐, 1959년 11월부터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재직하였다. 변노섭은 1959년 3월 국제신보사 상임 논설위원으로 재직하였다. 4·19 혁명이 일어나자 이병주는 부산시 중등교원노조의 고문으로, 변노섭은 사회당 경남도당준비위원회에 입당하여 무임소 상임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병주는 노동자·농민 등 기층 민중을 기반으로, 남북 간의 정치 협상과 비정치적 분야의 광범한 교류를 통한 중립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한 통일을 주장하였다.
변노섭은 1961년 3월 23일 부산역 광장에서 ‘반민주악법반대 경남학생공동투쟁위원회’가 개최한 ‘반민주 악법 반대 시민 궐기 대회’에서 「반공임시특례법」과 「데모규제법」의 반(反)민주성을 규탄하고, 5월 13일 노동 회관 앞 광장에서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가 개최한 ‘남북 학생 회담 환영 및 민족 통일 촉진 시민 궐기 대회’에서 남북 학생 회담을 지지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외에 이병주와 변노섭은 각종 시국 강연회와 국제 정세 해설회 등에 참석하여 교원 노조의 합법화를 지지하고 통일 논의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결과]
4·19 혁명 시기 이병주와 변노섭의 활동은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북한을 이롭게 하고 민중 폭동을 선동하는 이적(利敵) 행위로 군사 법정에서 단죄되었다. 그 결과 1961년 12월 7일 이병주와 변노섭에게 각각 징역 10년이 선고되었다. 담당 검사는 선남식이었고, 재판장은 김정운, 배석 판사는 심상순, 윤관, 강대헌, 양준모였다. 1962년 6월 2일 상소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국제 신보』 주필 및 상임 논설위원 사건은 통일 문제에 대한 4·19 혁명 시기 진보적 지식인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국민 대다수의 여론을 기반으로, 남북 간의 협상과 교류를 통하여 평화적인 방식으로 통일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민중 폭동을 선동하는 이적 행위로 규정하여 범죄시하는 군사 법정의 현실 인식 역시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