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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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尙南道反民主惡法反對學生共同鬪爭委員會事件 |
영어의미역 | Gyeongsangnam-do Joint Students' Committee’s Struggle against Anti-democracy and Bad Laws |
이칭/별칭 | 2대 악법 반대 경남학생공동투쟁위원회 사건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2가 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세 |
[정의]
1961년 부산 지역에서 결성된 2대 악법 반대 학생 운동 사건.
[역사적 배경]
1961년 3월 초 장면(張勉) 정권이 「집회시위규제법」[일명 「데모규제법」]과 「반공임시특례법」을 제정하려 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를 민주화 운동을 정치적으로 탄압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긴 민주 세력은 전국적인 반대 운동을 격렬하게 전개하였다.
[경과]
1961년 3월 15일 부산시 중구 용두산 공원에서 부산 시내 대학생 40여 명이 모여 경상남도 반민주악법반대 학생공동투쟁위원회[약칭 2대악법 경남학생공투위]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최석환[부산대학교 법학과 4년]을 위원장으로, 손병선[부산대학교 정치학과 4년]을 기획위원 겸 학생부장 겸 동원부장으로, 나택균[부산수산대학 수산경제학과 4년]을 선전부장으로 하고,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약칭 민자통 경남협의회] 사무실을 사무소로 정하였다.
경상남도 반민주악법반대 학생공동투쟁위원회는 3월 23일 부산역 광장에서 ‘2대 악법 반대 성토 궐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부산역전에는 학생 2,000여 명과 일반 시민 4,000여 명으로 총 6,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집회에서는 부산수산대학, 경남상업고등학교[현 부경고등학교] 등 7개 대학과 고등학교 대표들이 궐기사를 통해 장면 정권의 장기 집권을 위한 2대 악법의 제정을 반대하고 성토하였다.
대회가 끝난 후 시위대는 스피커를 장차한 지프차를 선두로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 행진을 펼쳐 부산시 중구 대청동의 민주당사와 부산시 서구 부민동의 경남도청을 거쳐 부산시 중구 중앙동의 구 부산시청 앞까지 행진하며 2대 악법 반대를 외쳤다. 도중에 민주당사와 도청 앞에서 시위대는 연좌데모를 펼치기도 하였다.
4월 13일 경상남도 반민주악법반대 학생공동투쟁위원회는 부산시 중구 중앙동 노동 회관 앞 광장에서 부산공업고등학교, 경남여자상업고등학교, 배정고등학교 등 시내 고등학교 학생 약 1,500명을 모아 2대 악법 반대 집회를 가졌다. 전국적인 연대 활동도 전개했는데, 4월 16일 경상남도 반민주악법반대 학생공동투쟁위원회는 서울의 삼일당에서 열린 반민주악법반대 전국학생공동투쟁위원회에서 개최한 2대 악법 반대 강연회에 손병선을 대표로 참석케 하여 연설하게 하였다. 4월 19일 나택균은 임종태 등과 함께 호소문을 작성하여, 지프차를 타고 부산 공설 운동장에서 서부산서까지 전단 약 200매를 살포 선전하였다.
[결과]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경상남도 반민주악법반대 학생공동투쟁위원회의 최석환, 손병선, 나택균 등은 혁명 검찰에 의해 「특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61년 12월 1일 손병선은 징역 5년의 판결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상고 기각되어 1962년 1월 24일 형이 확정되었다. 최석환과 나택균은 1961년 11월 11일 공소 기각되어 석방되었다. 이 사건의 담당 검사는 이용욱, 재판장은 한문식, 배석 판사는 진창균, 김교창, 김윤경, 옥황남이었다.
[의의와 평가]
경상남도 반민주악법반대 학생공동투쟁위원회 사건은 민주 통일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입안(立案)된 2대 악법을 반대하는 투쟁을 처벌한 재판으로, 5·16 쿠데타의 성격이 4·19 혁명과 통일 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군사 정변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