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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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壽永烈士追念塔 |
영어의미역 | Monumental Tower for Honoring Gang Su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대로175번길 22[전포1동 696-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성환 |
[정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에 있는, 부산에서 4·19 혁명에 참여하였다 희생된 강수영(姜壽永) 학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강수영 열사 추념탑(姜壽永烈士追念塔)은 1960년 4월 19일 시위 도중 경찰의 총탄에 숨진 경남공업고등학교 학생 강수영을 추모하기 위하여 1960년 6월 19일 ‘경남공업고등학교 고강수영군추념탑건립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학내외의 힘을 모아 건립하였다.
[위치]
강수영 열사 추념탑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696-1번지 경남공업고등학교 내에 있다.
[형태]
추모비는 직육면체 기단의 정면 검은색 돌 위에 추모비의 명칭 등을 새기고 기단 위로는 왼편에 자연석을 세우고 그 가운데 의용(義勇)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기단의 오른편에는 직육면체의 검은색 석재 위에 세로로 추모사를 새겼다. 또 추모사를 새긴 석재의 뒷면에는 고인의 약력을 새겼다. 기단은 높이 305㎝, 너비 155㎝, 두께 91㎝이고, 비신(碑身)은 높이 122㎝, 너비 29㎝, 두께 58㎝이다.
[금석문]
비에는 ‘4·19 혁명 고 강수영 열사 추념탑’이라는 비제(碑題)와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1994년 대통령령 제14507호에 의해 의거를 혁명으로 개칭. 단기 4293년 4월 19일 자유 민주 수호의 대열에 나섰다가 불의가 쏜 총탄에 맞아 열아홉의 젊음으로 영웅적 화신이 된 학생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리의 순국 동지 고 강수영 군이다.
생전에 군은 천성이 슬기롭고 정의감 또한 불타듯 하였더니 때는 한고비 흔들리는 사직을 부여잡고 겨레가 한결같이 분노에 떨던 그날 희도록 불붙는 마음을 갈고 갈아서 세운 날을 방패 삼아 한껏 맨주먹으로 치솟는 불길을 터뜨리니 사무친 아우성이 산하를 울릴 즈음 분하다 그가 신명을 걸고 영화처럼 절규하던 민주 재건의 먼동이 트기 전에 숨지고 말았으니 곳은 자성대 임란의 터요 독재가 물러가기 일주일 전이었다.
짧은 일생을 조국을 위해 바친 정의의 기수 군은 이리하여 훈풍에 꽃잎 화사히 피는 철에 애처론 죽음 죽어서 다시 살아 겨레의 가슴 안에 고이 안기었나니 이 땅의 새싹들이 순혈로 가꾼 조국 강산에 바야흐로 새로운 자유가 꽃피는 오늘 모교와 더불어 청사 천주에 길이 불멸할 군의 꽃다운 넋을 불러 그날의 의거에 생사를 같이하던 동학의 선배와 후계들은 스승과 사회의 뜻있는 사람들의 탄성을 같이 모아 여기 한 조각 마음의 탑을 세운다.
단기 4293년 6월 19일, 경남공업고등학교 고강수영군추념탑건립추진위원회. 고인의 약력 창원군 웅동면 안골리 출생, 안청초등학교 졸업, 부산중학교 졸업, 본교 염직과 3년 재학 시 순국. 단기 4293년 6월 19일 건립.”
[현황]
경남공업고등학교가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에서 4·19 혁명으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19명인데, 이 중에서 개인 추모비가 있는 경우는 강수영과 신정륭이다. 학교 내에 4·19 혁명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희생을 기리는 기념물이 존재함으로써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역사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역사 교육에 큰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