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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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夜學 |
영어의미역 | YMCA Night School |
이칭/별칭 | 공식 명칭은 Y-근로청소년교실,별칭 와이야학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319[초량3동 1143-1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홍 |
[정의]
1981년 부산YMCA에 설립한 야학.
[설립 목적]
1981년 말 당시 부산YMCA의 사회개발부 간사였던 전점석이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벌인 노동 야학과 노동 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Y-근로 청소년 교실’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YMCA야학은 근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문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하였으며, 노동 야학의 성격이 강하였다. ‘와이야학’으로 불리었다.
[변천]
설립 이후 YMCA야학은 공개 기구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학마다 교사[강학]를 공개 모집하기도 하고 방송 매체를 통하여 학생[노동자]을 대규모로 모집하였다. 이에 회원이 증가하고 규모가 커지자 부산YMCA 회관 외에 연고를 활용하여, 외부의 여러 지역에 장소를 섭외하여 야학을 운영하였다. 부산직할시 남구 문현동의 한누리교회, 사하구 괴정동의 산정현교회, 해운대구 반송동의 제일교회, 사하구 학장동의 제일교회를 장소로 야학을 운영했고, 그 밖에 서구 토성동 등 여러 지역에서 YMCA야학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활발한 활동으로 경찰의 주목과 감시를 받게 되자 1980년대 중반에 부산YMCA 관리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여, 한때 일시적으로 노동자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1986년 이후 담당 간사였던 조미금이 통합 노동 야학의 논의 구조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YMCA야학의 프로그램은 영어, 한자, 교양 상식, 음악 등으로 구성된 생활 야학 형태였다. 특히 문화 프로그램이 강하였고, 강학들이 교재 연구와 논의를 통하여 사회구조적 내용을 채워나갔다. YMCA 회관에서만 3개 반을 담임제로 운영했는데, 강학의 수가 45명에 이르렀고, 예비 강학이 10여 명이었다. 졸업 후 소모임을 운영하여, 현장 활동과의 연계를 꾀하기도 하였다.
특히 와이 전용 캠프장을 이용, 여름 휴가기간 동안 해마다 2박 3일의 노동자 캠프를 열기도 했는데, 당시 캠프장은 변호사였던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었다. 노동자 캠프는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진행하였으며 외부의 노동자도 참가할 수 있었다. 현장 활동가 또는 다른 야학의 활동가들이 이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중반 통합 노동 야학이 조직된 후 함께 결합하여 부산YMCA 회관의 강당을 이용한 문화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현황]
정확한 시기는 알기 어려우나, 1980년대 이후 YMCA야학은 폐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YMCA야학은 합법 공개 기구에서 운영한 야학으로, 다른 야학에서 볼 수 없는 대규모 캠프 행사나 강당 등 공간을 활용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는 공개 기구의 장점을 살린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