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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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地圖 |
영어의미역 | Old Maps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기혁 |
[정의]
전통 시대에 부산 지역 일대를 그린 지도.
[개설]
부산 지역을 그린 고지도로는 조선 전도 및 도별도의 일부로 묘사된 지도, 군현 지도책에 삽입된 동래부·기장현 지도 및 일부 장소를 그린 지도 등이 있다. 조선 전도 내에 부산이 그려진 지도로 가장 오래된 것은 1402년(태종 2)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들 수 있다.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한 하계망이 비교적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부산 일대의 지명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이후 지도가 발달되면서 이들 지도에서 부산 일대가 더욱 상세하게 표현되었다. 조선 후기인 17~18세기에 군현 지도가 발달하면서 부산을 대상으로 하는 지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이 시기 20리 방안 지도에 묘사된 지리 정보는 19세기에 제작된 대축척 조선 전도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이다.
[부산 일대를 그린 옛 지도]
1. 군현 지도책
부산 일대가 상세하게 그려진 군현 지도의 소장처별 목록과 서지 내용은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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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형태로 볼 때 군현 지도첩이 18종, 낱장으로 되어 있는 것이 3종, 읍지 부도로 되어 있는 것이 5종이다. 소장처별로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12종으로 가장 많으며, 이어 국립중앙도서관이 6종,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2종, 그 밖에 6종이 각 기관에 산재되어 있다. 지도첩은 책자식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분첩식으로 편찬된 것도 있다. 대부분의 지도는 18세기 이후 편찬되었으나 정확한 연도 파악이 안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채색 필사본이며, 동래부는 다양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주기의 경우 지도와 동일면 혹은 별지에 기재되어 있으며, 『해동 여지도(海東輿地圖)』와 같이 별도의 책[補]에 수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방위는 십이간지(十二干支) 혹은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표시되어 있거나 방향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지도도 15종이나 된다.
지도 제작 연도를 판단함에 있어 향교의 위치 표기가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향교는 지도에 따라 읍성 동문 밖, 읍성 안, 현재 위치인 읍성 서문 밖에 기재되는 등 위치 표기가 상이하다. 이는 제작 시기마다 향교의 위치가 다른 데 기인한다. 현재 대티 고개 근처인 목장이 있었던 ‘오해야항(吾海也項)’은 위치가 올바르게 기재되어 있는 지도가 8종, 용당 부근으로 잘못 기재된 지도가 5종이다.
2. 낱장 군현 지도
이 유형의 지도에 속한 지도의 목록은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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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고종 대에 제작된 「1872 군현 지도(1872郡縣地圖)」가 대표적이다. 이 지도는 지리지적인 내용이 그림 안에 간단하게 주기로 나타나기도 한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등이 발생하면서 서양의 동점(東漸)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책의 일환으로 1871년 전국 각 군현의 읍지가 편찬되었다. 이어 1872년 중앙에서 전국 각 지역의 군사 시설 및 지역에 대한 파악의 일환으로 총 458종의 지도를 제작하였다.
기본적으로 군사적인 측면, 특히 진보 등 군사 시설에 대한 지도를 별도로 작성하였다. 회화적 아름다움을 지니면서도 지도의 내용이 『해동 지도(海東地圖)』 못지않게 상세하다. 산과 하천, 고개, 왕릉, 사찰, 면, 역참, 장시 등 지역의 모습이 다른 어느 지도보다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 중 부산 지역을 대상으로 제작된 지도는 11매로서 그중 9매가 진지도이다. 이 중 좌수영성, 부산진, 서평진, 다대진, 개운진, 두모진 지도는 양식이 비슷할 뿐 아니라 동래부 지도를 확대한 느낌을 준다. 이들 진이 당시 경상 좌수영에 속해 있던 것으로 보아 진지도들은 몇 사람에 의해 일괄적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3. 지리지 중 부도
조선 시대에 발행된 읍지와 지리지 등에서는 부도(附圖)로서 첫머리에 각 군현의 채색 지도가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 지도의 목록은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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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와 기장현 군현 지도가 첨부되어 있는 지리지로는 조선 전기의 『해동 제국기(海東諸國記)』와 후기에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읍지(慶尙道邑誌)』, 『영남 읍지(嶺南邑誌)』 및 『동래부지(東萊府誌)』, 『기장현 지리지(機張縣地理志)』 등이 있으며, 주로 산천과 진보, 영에 대한 내용을 지도에 도시하였다. 지도화하기 어려운 조세, 호구 수 등은 제외되었다. 『여지도서』에서는 지역의 전체상을 보여주면서 경제적인 요소를 강조하였고, 『경상도 읍지』에서는 군사적인 요소를 강조하였다.
4. 대축적 지도 및 주제도 중 부분도
18세기 이전까지는 군현 지도보다 전국 지도나 도별 지도가 많았으나 일부 특수한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소축척 지도였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조선의 지도에 현저한 변화가 나타나 대축척 지도가 만들어졌는데, 앞에서 설명한 군현 진지도들이 이에 속한다. 축척이 큰 지도가 만들어짐에 따라 지도의 크기도 대형화되었고, 지도에 표시되는 내용이 상세하고 풍부해졌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국가에서 지도의 민간 소유를 금했다고 하지만 사회가 안정되면서 민간에서도 지도를 제작하였다.
정상기(鄭尙驥)가 제작한 『동국지도(東國地圖)』에 백리척 등 축척이 표시되는 등 정확한 대축척 지도의 제작과 함께 전국 지도첩이 만들어졌다. 동래·기장 지역이 상세하게 묘사된 대축척 지도첩으로는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동여비고(東輿備攷)』와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청구도(靑邱圖)』, 『동여도(東輿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등이 있다. 동래부가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된 지도는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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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 후기 군사용이나 목장 지도 등 국가의 특수한 목적에 의해 관방도, 수로도, 진지도, 목장 지도 등이 대축척으로 그려졌다.
[의의와 평가]
부산 지역을 대상으로 그려진 지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중 군현 지도는 4가지 유형으로 나타나지만, 내용과 지도 구성 등을 볼 때 국가적 입장에서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다. 즉 중앙 정부의 입장에서 지방 행정을 파악하고자 하였던 전통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군현은 중앙에서 바라본 군현, 감영에서 바라본 군현, 군현의 중심에서 바라본 방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행정 중심을 축으로 지도가 그려졌다. 특히 관아, 객사, 향청 등 공공건물의 배치와 구조를 주변 지역보다 확대해 그리는 한편, 주변부는 산천 등으로 처리함으로써 읍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축적이 서로 상이한 다원적인 축적을 적용하여 권력 공간을 강조하였다.
각 방리의 위치를 관아로부터의 거리로 기록하여 읍치의 중심성을 보여주었다. 지도에서 읍치를 강조하는 것은 군현 지도의 제작이 중앙 정부와 지방 수령의 통치 및 행정 편의를 위해 작성된다는 목적과도 일치한다. 또한 모든 지도에서 봉수망, 도로 등이 표현되는 것은 중앙 집권화 체제의 확립을 보여주는 것이며, 국가 정부가 전국을 파악하는 기본적인 요소의 하나가 교통, 통신망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요소는 독립된 부분을 이루기보다는 군사·경제·행정 등 다른 부분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