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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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月寺新基重創之上樑記文懸板 |
영어의미역 | Signboard for a New Building at Haewol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170[금성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에 있던 해월사에서 제작된 조선 후기의 현판.
[개설]
1990년 부산 학생 수련원 입구 도로 위쪽 논에서 자연 석탑[높이 2.5m, 너비 3.5m]이 발견되어 그곳을 절터로 추정하게 되었으며, 현재 현장에서 수습한 현판 두 장 가운데 한 장에서 한 편의 상량(上樑) 묵서(墨書)가 전하고 있다. 해월사(海月寺)의 승군(僧軍)은 산성에 거주하면서 잡역을 부담하였다. 산성 승군은 출신 고을에서 부담하여 승군의 잡역을 면제받는 조건으로 모승(募僧)에 응하였지만, 산성의 승영(僧營)에 편제되면 산성에서 금양(禁養)하는 소나무 숲을 보호하는 일 등 부과되는 특정 잡역을 져야 하였다. 해월사 신기 중창지상량 기문 현판(海月寺新基重創之上樑記文懸板)에는 1795년(정조 19) 해월사를 중창하였을 때 승군을 동원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형태]
목판으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가로가 190㎝, 세로가 16.5㎝이다.
[특징]
해월사 신기 중창지상량 기문 현판에는 금정산성(金井山城)을 관리하기 위해 창건된 해월사를 중창할 때, 여러 사찰과 수많은 승군들이 동원되었음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불사를 지원한 각 사찰의 승려나 전·현직 관료 등 대소의 시주자 집단이 기록되어 있고, 금정산성과 관련된 경내의 각 사찰에서 도목수(都木手)를 비롯한 목수들과 도편수(都片手)를 비롯한 승군 작대의 지휘 체계를 보여 주고 있다.
「해월사 중창 상량기」[청 건륭 60년[1795]-사찰 중창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월사가 금정산과 낙동강을 함께 관망할 수 있는 천하의 명당지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동래 부사 윤장렬의 공로를 칭찬하고 있다. 경내 시위질은 범어사 2명, 국청사 1명, 운수사 1명이며, 각 사조질은 해월사를 제외한 경내 각 사의 인력으로 보이는데 영장, 좌편장, 우편장, 지전 각 1명이 있다. 시승장은 득성이며, 감역은 정승장 □인, 출조 별좌는 선희이다[乾隆陸拾年乙卯九月初三日金井山海月寺新基重創之上樑記文 謹惟蓬萊之北 有山名曰金井山 有寺曰海月寺 舊基不寧空廢有年矣 一境內累會 改建新基 碧海東津 南邊之陸 坐辛向據 有神明之所吉□母乃境內衆力之□助而然耶 奧在已癸未 設城之伽藍 若夫剛巒環擁澗谷□ 會飛來鷲嶺之湧出洛東之水淸泉不可盡述 重用惟茲境內合力中 猶獨就洽之功大哉 其餘共扶列錄于后 而爰擧修樑不避之監 遂詠短句以俟他日焉 成造都營嘉善就哈時 便將通政得性 監役前便將起仁 成造別座前記室善熙 境內時任秩 梵魚寺 時便境 通政再摠 時和尙 通政覺善 國淸寺 時和尙 通政采心 雲水寺 時和尙 通政慕仁 境內前啣秩 時糾正便通 嘉善就□ 前便將通政麗桓 前僧統泰性 前便統初允 前便統熙允 前便統通政信定 前和尙奉性 前和尙性覺 各寺助秩 營將 前便將六行 左片將進行 右片將宇充 時持殿 比丘有信 緣化秩 都片手鄭麗興 前面片手寬湜 後面片手萬岑 大淳 采定 金光澤 南□□ 便海 淸便 道眼 金龍三 冶匠辛檢察 供養主智守 貝木 有成 本寺秩前和尙頓寬 便再云智乃 境內各寺設軍秩 梵魚寺[이하 일반 승려 명단 생략] 國淸寺役軍秩[이하 일반 승려 명단 생략] 雲水寺役軍秩[이하 일반 승려 명단 생략] 國淸寺三綱所[이하 명단 생략] 時書記慕允 時首便首志允 時三補善性 前啣秩 前和尙鵬性 前和尙任札 前和尙幻一 時哨官錦性 國淸寺 時持殿妙軟 上樑文兼書雁上樑文 煩挾祚 故末露 於此後 待人以善著 億萬千秋 不携以記].
[의의와 평가]
해월사 신기 중창지상량 기문 현판은 해월사의 중창에 승군이 동원되고, 관련 사찰의 지원 상황을 상세히 보여 주고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정식으로 해월사 터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금정산성의 방어 사찰인 해월사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