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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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月佛宇經營-海月寺法堂上樑記懸板 |
영어의미역 | Signboard for Haewolsa Temple Dharma Hall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160[금성동 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정수암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현판.
[개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주영택은 1990년 부산 학생 수련원 입구 도로 위쪽 논에서 자연 석탑[높이 2.5m, 너비 3.5m]을 발견하고 이곳이 절터임을 추정하였다. 현재 해월사 터에서 수습된 현판 2장 가운데 1장에 2편의 상량(上樑) 묵서(墨書)가 전하고 있다.
해월사(海月寺)의 승군(僧軍)은 산성에 거주하면서 잡역을 부담하였다. 산성 승군은 출신 고을에서 부담하던 승군의 잡역을 면제받는 조건으로 모승(募僧)에 응하였지만, 산성의 승영(僧營)에 편제되면 산성에서 금양(禁養)하는 소나무 숲을 보호하는 일 등 부과되는 특정 잡역을 져야 하였다.
해월 불우 경영·해월사 법당 상량기 현판(海月佛宇經營·海月寺法堂上樑記懸板)에는 1708년(숙종 34)에 해월사를 중창하고 법당을 지었을 때 승군을 동원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연화질(緣化秩)이란, 연화소(緣化所)[불사(佛事)를 특별히 맡아보는 임시 사무소]의 일에 관계있는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명부를 말한다.
[형태]
목판으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가로가 227.5㎝, 세로가 15.5㎝이다.
[내용]
‘해월 불우 경영(海月寺佛宇經營)’[「해월사 중창기」]과 「해월사 법당 상량기(海月寺法堂上樑記)」는 청(淸) 강희(康熙) 47년, 즉 1708년에 해월사에서 제작되었다. 해월 불우 경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월사의 불우가 해가 오래되어 서까래와 기와가 조각이 나 썩고 부서지고 비에도 씻기어, 지나는 객들의 탄식 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인흡(印洽)이 재력을 흡족하게 모아 금정산 아래에 1층 높이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동래 부사 강필리의 도움으로 해월사를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말미에는 1708년에 해월사 법당을 상량하였다는 기록이 첨부되어 있다.[日月之幾何 康熙四十七年戊子四月之世歲久 正班椽爭枕 縫瓦片片 □破黃面金 □未完雨洗 非但居徒之含悲 探眞騷客之發歎時呼 不再來歲値丙戌萊伯 姜候之仁哈募淨檀施之物 不數月告厥成功 金井一層 高名功 高卓焉 如來之實見 菩薩之鑑應 豈不壯哉 其餘成敗 都在有數□陳其□己 而時 維歲次丙戌三月日 官千摠李世光 都監兼僧將□熙 法堂都片將通政智玄 食堂片將通政成伯 化主兼大施主秩 嘉善位眞 通政妙心 通政自信 通政惠淨 通政守天 通政上玉 通政休日 嘉善允行 嘉善贊英 通政松鶴 通政自明 通政大奇 通政眞日 通政九翎 通政雪蓮 通政信云 通政鶴宗 通政萬玄 通政漢楚 通政位學 通政樂淸 通政會英 通政聰海 通政快溟 通政性能 通政儀哲 通政智伯 通政太云 緣化秩 都木手圓一 法堂都片手振朋 別座信伯 守哲 來往 再乞 性諶 負木 尙文 會性 有三 元昊 性察 淨希 寶字 豊悟 供養主和最淑 本寺秩 前和尙鶴宗 前和尙萬玄 時和尙兼內府監談世 信伯 淨希 時首僧喜安 再玄 再花 尙文 有三 董菜 時持處聞惠 信云]
「해월사 법당 상량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당은 천상전이라 하였고 총 29명의 승려의 대시주가 있었는데, 이 중 상행과 같은 범어사 승려가 포함되어 있다. 가파른 곳에 철을 지은 공덕이 온 세계에 가득차고 은혜가 만세토록 영광을 누리게 한다. 공인(工人)들과 도운 이들을 뒤에 기록한다.[康熙四十七年 戊子 四月初九日 海月寺法堂上樑記 執繩量地日天上殿 □嶸功滿于沙界 恩沾萬世榮工助開列于后 大施主秩 通政廢學 通政寬□ 前判事寶益 通政再特 通政祖學 通政太全 一敏 處輝 采性 尙行 時書記淸震 玄元 漢雨 通政碩寄 通政最卞 通政學垣 通政□惠 通政雪摠 嘉善最明 通政寶珠 前判事萬玄 前摠攝聰惠 通政楚信 前判事碩贊 嘉善俊卞 前摠攝□俊 前判事恕弘 緣化秩 都木手組軒 淨田 左片手呂湜 右片手處甘 化主秩 摠攝衍摠 別座兼化主通政信希 蓋瓦匠惠淨 冶匠金日海 都監通政海云 住持兼都摠攝法鎰 □□□□□]”
[특징]
해월 불우 경영·해월사 법당 상량기 현판에는 부산 금정산성(釜山金井山城)을 관리하기 위해 창건된 해월사를 중창하고 법당을 건립할 때, 여러 사찰과 수많은 승군들이 동원되었음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불사를 지원한 각 사찰의 승려나 전 현직 관료 등 대소의 시주자 집단이 기록되어 있고, 부산 금정산성과 관련된 경내의 각 사찰에서 도목수(都木手)를 비롯한 목수들과 도편수(都片手)를 비롯한 승군 작대의 지휘 체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해월 불우 경영·해월사 법당 상량기 현판은 해월사의 중창과 법당을 지을 때 승군이 동원되고, 관련 사찰의 지원 상황을 상세히 보여 주고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정식으로 해월사 터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부산 금정산성의 방어 사찰인 해월사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